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호(李基鎬)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2605268
  • 전몰일자 : 19511109

공훈사항

이기호 일등중사는 1931년 1월 15일에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면에서 출생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7월 22일, 그는 충북 청주의 제16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제2연대가 1950년 6월 12일에 홍천으로 이동할 때, 그는 제2연대로 전속되었다.
이기호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6사단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고, 초기전투-지연전-반격 및 북진작전으로 초산까지 진격했다가 다시 중공군의 기습을 받아 38도선으로 철수하여 전곡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사단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중공군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로 진지에서 철수하여 장호원 일대로 이동했다. 이후 유엔군은 대규모 중공군의 2월 공세, 4월 공세, 5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제7·제19연대가 1951년 5월 20일부터 용문산에서 출발하여 홍천강까지 진출했다. 이어서 이기호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2연대가 5월 24일부터 계관산-북배산 방향으로 공격했다. 사단은 연대별 교대를 하며 공격하여 5월 28일에 화천저수지까지 진격했다. 잠시 부대정비를 실시한 후 6월 6일부터 계속 공격하여 취봉(987고지)를 탈취하고, 6월 15일에는 백암산까지 점령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시키면서 군사력 증강에만 집중하자, 유엔군사령관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각 부대에 공세적인 작전을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제2연대가 먼저 8월 31일에 백암산 전방의 등대리 부근 819고지-462고지를 공격했으나, 중공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9월 1일까지도 점령하지 못해 철수했다. 이후 정비 후 9월 21일부터 재차 공격하여 결국은 819고지를 탈취했다.
제6사단은 계속해서 금성천 분지를 장악하기 위해 10월 13일에 백암산에서 공격을 개시했다. 제7·제19연대가 공격했고, 제2연대는 예비로 후속하다가 10월 16일에 전방연대를 초월하여 중공군을 격파하고, 21일에 교암산(770고지)까지 진출했다. 이후 교암산 방어진지를 10월 30일에 미 제24사단에 인계하고, 제2연대는 사단 예비로 용호동 일대에 위치하며 수색작전 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그가 소속된 소대는 11월 9일에 수색작전 중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호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22492 육)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4-ㅅ-08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