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호(李基浩)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2604106
  • 전몰일자 : 19510914

공훈사항

이기호 이등상사는 1927년 4월 6일에 출생하였다(출생지 미상). 이 이등상사는 1949년 7월 22일에 입대 후 제2사단 제16연대에 배치되었다.
제8사단 제16연대는 1951년 2월 11일 중공군의 제4차 공세에서, 강원도 횡성군에서 전력의 70%를 상실하는 큰 타격을 받았다. 이 전투에서 제8사단 지휘부를 비롯한 장교 300여 명과 사병 7,000여 명이 전사·실종되고 남은 인원은 3,000여 명에 불과했다.
횡성전투 이후 국군 제8사단은 원주 남쪽의 주천리로 물러나 부대를 수습한 다음 다시 대구로 이동하여 부대를 재편성한 후 후방의 공비토벌 작전에 임하게 되었다. 한편 중공군은 횡성 남쪽의 원주와 지평리로 진출하여 공세를 계속하였으나 지평리에서 이들의 공세는 저지되었다.
이후 국군은 5일간 제병협동작전을 시행하였으나 전선돌파에 실패했다. 이 작전에서 제8사단은 큰 타격을 받고 주포리로 흩어지며 철수했다. 이에 제8사단은 대구로 이동하여 부대 재편성을 하며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어 2차 호남지구 공비토벌 작전에 참여했다.
공비토벌 작전 이후 제16연대는 1951년 7월 28일~7월 29일까지 철미동지구 유격전에 합류했다. 전투 이후 제16연대는 서화면 서화리에서 잠시 휴식하다가 1951년 8월 9일부터 1차 노전평 지구 전투에 참여해 451고지-무명고지를 공격하여 2일 만에 고지를 탈취했다.
이 이등상사가 속한 제16연대는 정비를 완료하고 1951년 9월 9일부터 시작된 철미동 동북방 지구 전투에 참여했다. 제16연대는 제21연대의 지원과 미 해군의 함포지원 아래 북한군을 격퇴하면서 854고지 정상 부근의 6개 고지를 하나씩 점령해나갔다. 고지의 점령과 동시에 고지를 사수하기 위해 진지를 구축하고 방어태세를 강화했으며 잔적 소탕 임무까지도 병행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 이등상사는 1951년 9월 14일 방어진지를 구축하는 중에 적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호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42묘역-1판-1500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2-ㄹ-07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