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호(李基鎬)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10907

공훈사항

이기호 순경은 1930년 8월 9일 충북 단양군 영춘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충북도경 단양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단양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하자 치안국은 전시 비상경비총사령부 체제로 전환했다.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7월 8일 충주 지구에서는 국군 제2연대와 충주 경찰병력 158명이 북한군 제1사단과 제12사단의 협공을 받았다. 당시 경찰부대는 3개 소대로 편성하여 남한강 제방의 적 예상 도선장과 탄금대 일대의 요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군경부대는 중과부적으로 수안보 지역으로 철수했다.
국군과 경찰이 계속 후퇴하면서 단양경찰도 7월 초부터 축차적으로 남으로 후퇴했다. 단양경찰은 영주-풍기-예천-안동-군위-칠곡까지 이동하는 동안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주보급로 경비 임무를 수행하며 7월 30일 칠곡에 도착했다. 단양경찰은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되기 전까지 이 지역에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국군과 유엔군이 9월 16일 총반격작전을 개시하자 각 도(道) 경찰국은 관할지역 경찰관서를 수복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 9월 20일 칠곡을 출발하여 9월 28일 단양경찰서를 수복한 단양경찰은 지역 내 치안유지활동을 강화하는 한편 잔적소탕작전을 실시했다.
국군·유엔군의 총반격으로 퇴로가 차단된 북한군들은 가까운 산지로 들어가 공비들과 합류하여 게릴라 활동을 전개했다. 이에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공비섬멸 작전(1차: 1951.3.10-4.10, 2차: 1951.4.15-5.5, 3차: 1951.7.15-8.15) 지침을 하달하고 전국적으로 공비토벌을 실시하도록 했다. 이 순경은 제1차-제3차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1951년 9월 7일 단양 사평리에 10여 명의 공비들이 출현하여 양민을 학살하고 가축과 식량을 약탈한다는 정보에 따라 단양경찰이 출동했다. 단양경찰이 현장에 도착하자 곧바로 적과 교전이 벌어졌으며, 이 순경은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싸워 공비 2명을 사살하고 계속 공격을 하던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호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5-ㄷ-040호)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