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형(李基炯)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759429
  • 전몰일자 : 19530523

공훈사항

이기형 이등중사는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에서 1929년 7월 6일에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이등중사는 1952년 1월 30일에 입대한 후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등중사의 부대 전입 당시, 제8사단 제21연대 장병들은 공비토벌작전 종료 이후 1952년 3월, 다시 미군 제10군단에 배속 전환되었다. 이후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으로 이동하여 미 해병대 제1사단의 노전평 북방 854고지, 812고지 작전지역을 인수했다. 이후 제8사단은 북한군과 대치한 상황에서 진지 보수에 치중했다.
제 21연대는 1952년 9월 21일 북한군 제45사단의 공격을 받았다. 이에 일시적으로 854고지를 점령당하기도 했지만 미 해군, 공군의 화력지원을 받아가며 1952년 9월 21~22일간 북한군 제45사단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었다. 수도고지는 1952년 9월간 국군수도사단과 중공군 제34사단, 제35사단 간에 수차의 공방이 벌어졌던 해발 600m 능선상의 고지로, 제21연대는 1952년 10월 25일 강원도 김화군으로 이동하여 수도사단으로부터 수도고지 일대의 작전지역을 인계했다.
수도고지는 그 위치나 규모로 보아 전초에 불과했다. 오히려 수도고지는 적 주저항선의 700m 고지들보다 낮아 적의 감제관측을 허용하여, 주간에는 진지공사나 보급추진 등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그러나 수도고지는 피아간의 전략적 요충지로 여겨져 주요 결전장이 되어 왔고 이러한 연유로 결코 상실해서는 안 될 고지로 인식되어 동굴 진지로 구축되었다. 이에 이 이등중사는 수도고지의 진지공사 및 수색작전을 지휘하였다. 당시 수도고지 전선은 1952년 10월 이후 소강상태를 보였다.
이러한 소강상태는 1953년 5월 13일 중공군의 수도고지 공격으로 종료되었다. 제8사단 장병들은 당시 수도고지의 주저항선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중공군은 연 막탄과 전차 및 포병지원을 받으며 수도고지 진내까지 공격해왔고, 제8사단 제21연대 장병들은 진내에서 중공군과 백병전을 벌이게 되었다. 이 이등중사는 1953년 5월 23일 수도고지 능선의 진지를 사수하기 위해 전투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형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장병1묘역-119판-8032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4-ㅈ-04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