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형(李基炯)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9600873
  • 전몰일자 : 19501114

공훈사항

이기형 이등상사는 경상북도 경주군 남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 공산세력들의 침투 및 교란 활동으로 사회가 매우 혼란스러울 때인 1949년 7월 중순ㅇ에 서울 용산의 제17연대로 입대했다. 이후 연대는 동년 11월 15일에 옹진반도로 이동하여 옹진지구전투사령부에 예속되어 제2연대로부터 은파산 방어 임무를 인수하였다. 그리고 1950년 3월 1일부로 제18연대마저 철수하고 옹진반도에는 제17연대만 남아 방어했다.
제17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병력의 열세와 지형의 불리한 조건에서도 용감하게 싸웠으나 26일 아침에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인천으로 철수했다. 이후 연대 장병들은 대전의 육본경비 임무를 수행하다가 스미스특수임무부대가 투입될 때 갈곶리 전투에 참가하고, 이후 수도사단에 배속되어 보은-상주 일대에서 지연전을 수행했다. 그리고 8월 1일에 낙동강을 건너 안동에서 전투를 치룬 후 육군 예비가 되었다가 8월 중순에 포항지구전투사령부 소속으로서 낙동강방어선상의 기계-안강 지역에 투입되었다. 이곳에서 연대는 9월 12일까지 북한군 제12사단과 일진일퇴를 거듭한 끝에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기형 이등상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9월 15일부터 시작된 인천상륙작전에 육군 중 유일하게 선발되어 9월 14일에 부산으로 이동하여 상륙함정에 승선했다. 그리고 연대는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9월 18일에 인천으로 후속 상륙한 후에 영등포 남쪽으로 기동하여 서울의 동쪽 지역을 탈취했다. 이후 유엔군의 주력이 38도선을 돌파하여 북진작전을 감행할 때, 연대는 서울에 남아 주요시설에 대한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중, 11월 7일에 국군 제2사단이 재창설될 때에 그 예하 부대로 편성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이 청천강을 건너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고 있을 때에 북한군 패잔병들은 포천-철원-평강 일대에서 후방교란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었다. 제2사단은 포천-평강 일대에서 유엔군의 후방을 교란하던 북한군 잔적소탕을 위해 투입되었다.
이기형 이등상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포천지역 일대에서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과 유엔군 병참선 경계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때 북한군 패잔병들은 단순한 공비가 아니라 지휘체계가 갖추어진 대규모 부대로서 후방 교란 활동을 했다. 그가 소속된 대대는 11월 14일에 북한군 패잔병을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적의 총탄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형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7-ㄲ-04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