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헌(이기헌)

  • 군별 : 육군
  • 계급 : 소위
  • 군번 : 207269
  • 전몰일자 : 19510609

공훈사항

이기헌 소위는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군번과 전상일자를 고려할 때, 그는 1950년 9월 18일에 부산 동래의 육군종합학교 6기로 입교하여 소정의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11월 25일에 육군소위로 임관하여 재창설된 제2사단으로 배치되었고, 그곳에서 사단 직할부대인 수색대 소대장으로 보직되었다.
이기헌 소위가 전입했던 때, 제2사단은 서울에서 재창설을 완료하고 의정부-포천-홍천 일대로 이동하여 후방교란을 실시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들에 대한 소탕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얼마 후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던 중 두 차례에 걸쳐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이때 사단은 상급부대 명에 의거 후방지역 작전을 중단하고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야간에 드디어 신정공세(일명 3차 총공세)를 시작하여 서울을 압박했다.
이기헌 소위가 지휘하는 수색소대는 적진으로 투입되어 적 지휘소 및 보급소를 타격하여 적을 교란시켰다. 북한군은 아군의 후방을 차단하며 포위 섬멸하고자 했다. 이에 제2사단 장병들은 중공군의 공격을 하룻밤을 버티지 못하고 다음 날인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진지에서 이탈하여 청평으로 철수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미 적들이 후방을 차단한 상태여서 전투하며 차단선을 돌파해야 했다. 그리고 1월 7일에는 충주에 집결한 후 미 제10군단 예비사단으로 풍기에서 재정비하며 충주-단양 간 병참선을 경계했다.
이기헌 소위가 지휘하는 수색소대는 주로 병참선 주변에 대한 수색작전을 실시했다. 그러던 중 2월 13일에 사단을 따라 안동으로 이동하여 일월산과 보현산 일대에서 잔적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후방지역작전을 완료하고 4월 28일에 청평 일대의 전방작전지역으로 이동하여 미 제9군단에 배속되었다.
당시 군단은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성공적으로 격퇴하고, 즉각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6월 중순에 육단리-적근산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당시 제2사단은 육단리 방면으로 진격했고, 이기헌 소위가 지휘하는 수색소대는 적진에 침투하여 적 후방을 교란하는 임무를 수행했으며, 6월 9일에 적 사단지휘소를 습격하여 교란했다. 이날 그는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헌 소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111-ㅅ-08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