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한(李基漢)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4833
  • 전몰일자 : 19510415

공훈사항

이기한 일병은 전라남도 장흥군 용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 및 두만강으로 진격작전을 진행 중이던, 1950년 10월 하순경 카투사(KATUSA, 주한 미군에 파견된 한국군)병으로 선발되어 경상남도 구포에 위치한 육군 제3훈련소에 입대했다. 이기한 일병은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미 제8군으로 배치되었으나, 이후 부대조정에 의해 다시 제5사단 제35연대로 배치되었다.
이기한 일병이 부대에 재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작전으로 압록강 및 두만강을 향해 진격했으나,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12월 5일경 17번 국도상의 춘천 지역에 배치되어 평양-서울 간 도로의 동측방에 대한 엄호작전 후 12월 13일부로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의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었다. 당시 제36연대는 가평 북쪽의 지암리 일대, 이기한 일병이 소속된 제35연대는 북한강 서쪽의 송암리 일대, 그리고 제27연대는 청평 동쪽의 호명산 일대에 배치되었다.
마침내 중공군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공격(제3차 공세·신정공세)을 개시하여 후방을 차단했다. 사단은 적의 압도적인 공격에 밀려 가평-횡성-여주-영주 일대로 철수하였으며 영주 지역에 침투한 북한군 제2군단 예하 부대들을 격멸했다. 사단은 다시 전방지역에 투입되어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공격을 개시하여 목표 점령을 앞둔 2월 10일에 중공군의 2월 공세를 위한 대규모 기동을 확인하고 야간 방어로 전환했다.
사단은 2월 12일 아침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일명 2월 공세)을 받고 철수를 개시하여 제천 북쪽 주천리 일대에 새로운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중공군의 2월 공세 이후 사단은 횡성 일대의 봉복산-태기산 전투(3월)에 참가하여 중공군 춘계 공세를 막아냈다. 그 후 사단은 4월 10일에 인제 방면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4월 17일에 우측 전방 제36연대가 원통 북쪽의 481고지와 봉화봉을 확보하여 캔자스선으로 진출하였으며, 좌측 전방 제35연대는 원통 북쪽 586고지에서 북한군의 역습을 격퇴한 후 월학리 일대로 진출하여 캔자스선을 점령했다. 이 전투에서 이기한 일병은 4월 15일 586고지에서 분대원과 함께 적의 역습을 격퇴 중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한 일병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27395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2-ㅂ-07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