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한(李奇漢)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7901616
  • 전몰일자 : 19500923

공훈사항

이기한 이병은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이병은 1950년 8월 1일에 입대한 후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병이 소속된 제8사단은 8월 1일 북한군 제12사단이 안동으로 집결함에 따라 제50포병 대대 지원 하에 안동 북쪽의 천등산과 연곡동 일대에서 진격을 저지했다.
북한군은 입암에 도착하여 기계 방면으로 향할 목적으로 아군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평에는 아군이 없었고 이를 알아챈 북한군은 진격을 개시했다. 국군은 1950년 8월 10일 북한군 제7사단이 기계 방면으로 이동했다는 제보에 격퇴를 위해 전투를 벌였다.
제21연대는 도평 337고지, 361고지에서 침입하는 적을 치열한 접전 끝에 저지하였고 수석봉에 진출하여 방어태세에 돌입했다. 이후 제8사단은 그 일대에 유격대를 배치함으로써 점령했다.
하지만 북한군은 1950년 8월 19일 용마산 방면으로 끊임없이 침투하였고, 제21연대는 이를 저지함으로써 교전했다. 제8사단 장병들은 1950년 8월 22일 515고지와 함께 633고지를 점령하고 공격을 개시하여 북한군을 패주 시켰다.
이후 북한군은 1950년 8월 25일 보현산 북방 도처에 침입을 개시했다. 제8사단 각 연대를 비롯하여 아군 또한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제21연대는 유엔 공군의 지원을 받아 북한군의 주저항선에 대대적인 폭격을 실시했다.
제21연대는 1950년 9월 10일부터 13일까지 낙동강 교두보상의 보현산 부근에서 북한군과 고지 선점을 위한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이 이병은 1950년 9월 23일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한 이병의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0391 국)을 추서하고 그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6판-1면-13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8-ㄱ-07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