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학(李奇鶴)

  • 군별 : 육군
  • 계급 : 소위
  • 군번 : 203154
  • 전몰일자 : 19501230

공훈사항

이기학 소위는 서울시 영등포구 독산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물리치고 북진작전으로 전환하자, 조국통일의 선봉에 서고자 일어섰다. 그는 예비역 소위였으나, 1950년 10월 5일 재소집에 즉각 응하여 제3사단 수색중대에 배치되었다.
이 소위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이북으로 북진하고 있었고, 제3사단은 동해안을 따라 북진작전을 펼치던 상황이었다. 연대는 10월 2일 38도선을 돌파했고, 5일 치열한 격전 끝에 적을 격멸하고 강원도 장전을 점령한 후, 6일 통천을 점령했다. 연대는 적의 가벼운 저항을 물리치고 계속 진격하여 9일 남대천 일대에 도착하여 원산 공격 준비를 했다.
북한군은 원산 방어를 위해 동해안방어사령부를 편성하고 패잔병과 중원부대 2만여 명을 동원하여 원산 방어에 임했다. 국군 제1군단은 원산 공격을 위해 우선 시가지를 감제할 수 있는 시가지 동서 고지군을 점령하기로 하고, 제3사단은 동쪽 고지군을 수도사단은 서쪽 고지군을 공격하도록 했다. 10월 10일 새벽 공격을 개시한 사단은 적의 완강한 저항을 물리치고 원산을 점령한 후 시내의 잔적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이때 수색중대는 적진에 투입되어 적정수집과 후방교란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사단 작전에 기여했다. 사단은 미 제10군단의 안전한 원산 상륙을 보장하기 위해 원산 외곽선을 확보하고 잔적을 소탕했다.
10월 26일 원산에 상륙한 미 제1해병사단에 경계임무를 인계한 사단은 11월 4일 신북청으로 북상했다. 11일 사단은 길주-백암-혜산진으로 북진하여 30일 사단의 선두부대가 한·중 국경선의 혜산진에 도달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이날 하달된 미 제10군단장의 철수명령에 따라 성진-흥남으로 철수했다.
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제3차 공세에 앞서 북한군 제2전선부대를 중동부 축선으로 투입하여 유엔군 후방교란을 시도했다. 이 소위는 수색대원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고 항상 수색작전과 후방교란작전 등에 앞장섰다. 그는 1950년 12월 30일 소대원을 이끌고 제2전선부대에 대한 적정 수집 중에 적의 공격을 받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학 소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7판-6면-09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6-ㄴ-03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