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하(이기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35105
  • 전몰일자 : 19510106

공훈사항

이기하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광역시 중구 덕산동 33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이 일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일병은 1950년 9월 19일에 입대 후 카투사로 선발되어 미 제8군으로 전입되었다가 육군의 부대조정에 의거해 제9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북한군의 9월 공세 당시, 제1연대는 경주 북방의 호명리 일대에서 9월 9일까지 북한군 제12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하였고, 이에 따라 낙동강 전선의 최후 위기를 극복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한편 아군이 북으로 진격함에 따라 퇴로를 차단당한 적의 잔류 병력은 아군의 후방을 교란했다. 동시에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방지역작전을 하던 미 제9군단과 예하 미 제2·제25사단이 청천강으로 투입되어 10월 15일에 창설된 국군 제3군단이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총반격작전으로 전환하였다. 아군이 1950년 10월 19일에 평양을 점령하고 계속 북진하는 전황 속에서 제9사단은 11월 15일에 전북 금산군 남이면에서 1개 대대 규모의 공비를 소탕했고, 동년 11월 20일에는 상용리에서 적 200여 명을 포획 및 섬멸하였다. 이어서 11월 23일에는 대둔산 대평리·삼왕리를 포위 공격하여 산속 깊숙이 은거하고 있던 적을 소탕하고 적의 근거지를 제거하는 전과를 올렸다.
12월 19일부로 제9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그 후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점령하였다. 이후 사단은 북한군 유격부대와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 적의 남하를 저지했다.
이후 12월 31일에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 당시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었다. 사단은 원대리-서림을 잇는 방어진지에서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적탄에 맞아 1951년 1월 6일에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0-ㄷ-07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