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택(이기택)

  • 군별 : 육군
  • 계급 : 대위
  • 군번 : 15571
  • 전몰일자 : 19500822

공훈사항

이기택 대위는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그는 공산세력들의 침투 및 교란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인 1949년 10월 중순에 호국군 장교에서 현역으로 전환되는 예현 2차 군사교육과정을 수료하고 동년 11월 17일에 소위로 임관하여 강원도 춘천의 제6사단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제7연대는 춘천에 연대본부를 두고 화천 방면을 담당했는데, 그가 부대에 전입했던 때에는 북한군 침공에 대비하여 방어준비에 집중했다. 이기택 대위가 소속된 제7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곧바로 전방방어지역에 투입되었다. 북한군 제2사단은 약 1시간에 걸친 공격준비사격으로 아군 방어진지를 무력화한 다음에 SU-76자주포(당시 전차로 오인)를 앞세우고 공격해 왔다. 연대는 소양강을 최후방어선으로 적에게 심각한 타격한 후 6월 27일에 춘천에서 철수했다.
이후 제7연대는 원창고개를 거쳐 6월 30일에 원주로 철수했고, 7월 1일에 충주로 이동하면서 지연전을 수행했다. 그리고 7월 4일 음성으로 이동하여 9일까지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켰다. 그리고 음성 지역을 국군 제1사단에 인계하고 문경 지역으로 이동하여 사단과 합류했다. 사단 장병들은 이화령과 조령 등 문경 일대와 점촌 –함창 일대에서 북한군 제1, 제13사단과 맞서 7월 14일부터 31일까지 18일 동안 격전을 벌이며 북한군의 공격을 지연시켰다.
이기택 대위가 소속된 제6사단은 8월 3일에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 일대의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북한군은 8월 4일 야간에 낙동강의 지류인 위천을 은밀히 도하하여 제7연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장병들은 낙동강 또는 위천이라는 장애물을 활용하여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했으나, 북한군의 공격은 13일까지 계속되어 피아 간에 치열한 전투로 사상자는 늘어만 갔다. 이에 사단은 8월 17일에 위천 방어선에서 철수하여 매봉산-365고지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반면 북한군 제1사단은 아군을 추격하여 8월 18일에 매봉산을 탈취하기 위해 보전협동으로 공격하였다. 이에 이기택 대위가 소속된 제7연대는 강력한 화력지원으로 적의 공격을 격퇴했으나, 적의 계속된 공격은 8월 22일까지 이어졌으며, 한때 연대는 365고지를 적에게 빼앗겼으나 즉각적인 역습으로 다시 탈환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중대장으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택 대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33묘역-판-144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5-ㅊ-02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