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태(李起泰)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9201413
  • 전몰일자 : 19501015

공훈사항

이기태 이등중사는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에서 철수하여 지연전을 펼치던 1950년 7월 15일에 경북 대구의 제25교육연대로 입대하여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제6사단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기태 이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8월 중순, 제6사단은 신녕 북방의 370고지 일대에 배치되어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있었다. 얼마 후 9월 초에 사단은 북한군의 대규모 공세를 맞아 국통산∼324고지를 잇는 고지군과 신령 북쪽의 화산 일대 방어진지에서 공세적인 방어로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사단 장병들은 유엔사의 반격작전 명령에 의거 9월 16일 오전 8시부로 반격을 개시했다. 당시 북한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그들의 후방이 차단된 줄도 모른채, 조림산 일대의 방어진지에서 완강히 저항했다. 이에 사단은 기상이 좋지 않아 상급부대의 화력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황에서 공격에 어려움을 겪다가 9월 22일에 조림산을 점령했다. 북한군은 조림산 일대에서 강력히 저항하다가 9월 22일 야간에 북쪽으로 소리 없이 퇴각했다.
제6사단 장병들은 9월 23일부터 북한군의 경미한 저항을 격파하면서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의흥-함창-보은과 괴산-충주-원주 방향으로 공격하여 9월 30일에 원주를 탈환했다. 사단은 10월 1일부터 횡성-홍천으로 공격하여 10월 4일에는 춘천을 탈환한 후 38선 경계인 모진교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소양강을 도하한 후 북한강을 사이에 두고 적과 대치하다가 10월 5일에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이후 10월 8일에 화천을 점령했고, 10일에 김화를 경유하여 금성을, 13일에 신고산을 거쳐 덕원을 점령했다.
이기태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10월 14일 오전 7시에 덕원을 출발하여 마식령을 넘어 양덕을 향해 진격했다. 그들은 10월 15일에 양덕을 공격했으며, 이날 북한군 패잔병들은 완강히 저항했으나 아군의 적수가 되지는 못했다. 이날 그는 양덕을 탈환하기 위해 전투하던 중에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태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7면-351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1-ㄴ-03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