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태(이기태)

  • 군별 : 육군
  • 계급 : 소위
  • 군번 : 204727
  • 전몰일자 : 19510219

공훈사항

이기태 소위는 서울특별시 성동구 동운 동조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이 소위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소위는 1950년 10월 23일에 종합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후 임관하여 제7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7월 5일에 제7사단이 해체됨에 따라 제1연대는 수도사단에 편입되었고, 동년 10월 25일에 제9사단이 창설됨에 따라 제1연대는 제9사단으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제1연대 소속이었던 이 소위는 전후 행정처리 과정에서 소속이 제9사단 직할부대로 정리되었다.
한편 아군이 북으로 진격함에 따라 퇴로를 차단당한 적의 잔류 병력은 아군의 후방을 교란했다. 동시에 예기치 않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해 후방지역작전을 하던 미 제9군단과 예하 미 제2·제25사단은 청천강 선으로 투입되었다. 따라서 국군 제3군단이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게 되었다.
제9사단은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제3군단에 배속되어 전북 대둔산 지구 및 충남 일대와 경북 서부지역의 공비소탕 작전에 투입되어 대둔산 지구 및 충남지역 일대를 담당하였다. 12월 19일부로 제9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고, 그 후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점령하였다. 이후 사단은 북한군 유격부대와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 적의 남하를 저지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어서 12월 31일에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 당시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었다. 사단은 원대리-서림을 잇는 방어진지에서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였다.
그 후 상급 부대명에 의거하여 영월-삼척 선으로 철수한 뒤 정선군 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하지만 이 소위는 전투 중 적탄에 맞아 1951년 2월 19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태 소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0-ㄷ-08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