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탁(李起卓)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0931
  • 전몰일자 : 19510625

공훈사항

이기탁 일병은 충청남도 보령군 청라면에서 출생했다(출생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에서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중공군의 신정공세)로 위기에 처했던 1951년 1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1사단 제9연대에 배치되었다.
이기탁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2월 중순, 제11사단은 화순의 화악산(613고지)과 백아산(810고지) 일대에서 대대적인 공비 토벌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가 소속된 제9연대는 함양, 광양, 거창 일대에서 근거지 파괴와 지도 인물 체포에 중점을 두고 작전을 전개했다. 특히 이전과 달리 유엔 공군의 지원을 받아 육군과 공군의 합동작전까지 전개했다. 그리고 제2대대는 3월 17일에 순천으로 이동하여 작전했고, 특히 화학산 일대에서 공비들과 교전해 남해여단장, 부여단장, 참모장, 중앙감찰부장 등 거물 인사를 비롯해 86명의 게릴라를 사살했다. 3월 22일에는 순천을 습격한 게릴라들을 소탕하며 남로당 문화부장 등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후 북한군 공비들의 세력 단위 활동하는 것은 소멸되었으나, 소규모 활동은 이어 갔다.
이기탁 일병이 소속된 제11사단은 4월 6일에 국군 제8사단에게 공비 토벌작전 임무를 인계하고, 4월 중순에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어 전방지역 방어임무를 수행했다. 사단 장병들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 시에 속초-간성 일대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다가 4월 25일에 양양 북방의 대포리를 연하는 선으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제11사단은 5월 7일에 반격으로 마등령-저항령-989고지 방향으로 공격하여 5월 11일에 989고지를 점령하고 계속 북쪽으로 진격했다. 그러나 5월 16일에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로 다시 철수하여 대관령-강릉 선에서 저지하고, 5월 22일부터 반격으로 전환하여 6월 10일에 향로봉-건봉산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되었고, 사단 장병들은 진지보강과 수색작전 활동에 집중하였는데, 이기탁 일병이 소속된 소대는 6월 25일 새벽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로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탁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2판-1면-16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3-ㅊ-04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