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출(李己出)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1112028
  • 전몰일자 : 19510510

공훈사항

이기출 하사는 경상북도 대구시 신암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9월 5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후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전황은 서울 함락 후 낙동강까지 철수했던 국군이 유엔군과 함께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집요한 공격을 물리친 상황이었다. 이어 인천상륙작전으로 반격 및 북진작전에 돌입했으나 예상치 못했던 중공군의 개입과 세 차례의 공세로 또다시 평택-삼척을 연하는 선까지 철수하였다.
이기출 하사와 연대병력은 1951년 1월 송계리-삼척선으로 철수한 후, 2월 3일 공격을 개시하여 2월 7일 강릉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1951년 2월 11일에 개시된 중공군의 제4차 공세에 전 전선이 밀리게 되자 다시 송계리-삼척선으로 철수하였다. 2월 25일 중공군의 저항이 경미하여 사단의 공격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이 하사와 연대병력을 신속히 속사리 부근으로 투입하여 중공군의 퇴로를 차단하도록 하였다. 이어 4월 15일 재반격을 개시한 이기출 하사를 비롯한 장병들은 한계령-오색리-관모봉을 연하는 선으로 진출하여 주저항선을 구축하였으며, 적의 보급 및 병력의 집결지로 판단되는 설악산을 점령하고 가리봉-용대리로 진출하기 위하여 약수리 부근으로 이동하였다.
양양전투를 수행한 이기출 하사와 연대병력은 5월 7일부터 설악산지구전투로 북한군의 춘계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였다. 산악지형에서 북한군의 기관총 총성은 험준한 산악기동으로 체력이 소진되고 식량과 탄약을 재보급받지 못하여 사기가 저하된 장병들에게 심리적인 영향을 미쳐 이 하사와 연대 장병들의 공격은 좌절되기 일쑤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이기출 하사는 1951년 5월 10일 치열한 백병전을 펼치던 중 북한군의 집중사격을 받고 설악산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출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3판-14면-8578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4-ㅁ-08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