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출(李基出)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6694
  • 전몰일자 : 19530720

공훈사항

이기출 일병은 경상남도 부산시 남구 망미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4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 병으로 분류되어 제7사단에 배치되었다.
이기출 일병이 전입했던 때, 미 제7사단은 철원평야 동쪽의 중가산에서부터 김화 북쪽 하감령에 이르는 지역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반면 중공군 제45사단은 오성산에서 김화로 뻗어 내린 능선에 위치한 저격능선(580고지)과 삼각고지(598고지)에 전초를 운용했다. 이 전초는 아 진지를 감제 관측할 뿐만 아니라 김화 방어에도 대단히 위협적인 존재였다. 이에 유엔군사령부 차원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두 고지에 대한 공격을 하기로 했다.
이기출 일병이 소속된 미 제7사단은 1952년 10월 14일부터 김화 북방 삼각고지를 공격하여 탈취했다. 이에 중공군 제15군단 예하 부대들이 역습으로 다시 빼앗고자 했다. 이후 쌍방 간에 치열한 고지쟁탈전이 벌어졌다. 사단은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에 많은 사상자를 내고도 목표를 완전히 확보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 제7사단은 군단장 명에 의거 삼각고지의 작전지역을 10월 25일부로 국군 제2사단에게 넘겨주었다.
미 제7사단은 1953년 1월 초 진지를 강화하며 탐색과 소부대전투만을 반복하는 가운데 포로송환 문제로 휴전회담도 중단된 상황에 있었다. 한편 중공군은 공세역량을 강화한 후에 3월 23일에 미 제7사단이 방어하고 있던 역곡천 남안의 불모고지(275고지)와 포크찹고지에 대해 공격하여 탈취했다. 이기출 일병은 미군 장병들과 함께 역습으로 고지를 탈취하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이기출 일병이 소속된 미 제7사단은 유엔군의 군사전략에 의해 군사작전의 확대를 스스로 억제함으로써 수세적인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한편 중공군은 휴전을 직전에 둔 7월에 공세 행동을 하되, 공격목표는 국군 사단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반면 미 제7사단 장병들은 전투가 없이 적에 대한 수색작전만 강화했다. 그가 소속된 소대는 7월 20일에 방어진지 전방으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매복조를 발견하여 격멸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91-ㄴ-02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