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춘(李起春)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245946
  • 전몰일자 : 19510423

공훈사항

이기춘 이병은 1923년 10월 21일에 경기도 광주군 광주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19연대로 배치되었다.
이기춘 이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9월 중순, 제6사단은 낙동강방어선인 신령 일대에서 반격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낙동강 전 전선에서 일제히 반격을 개시했다. 사단은 처음 며칠간 북한군의 방어선을 돌파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으나, 9월 22일부터 도망가는 북한군을 추격하여 9월 30일에 원주를 탈환하고, 10월 6일에 38선을 돌파했다. 이어 김화-성천-순천-개천을 거쳐 10월 20일에 희천에 도착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압록강을 향해 10월 말과 11월 말에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공세를 펼쳤으나, 그때마다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큰 피해를 받고 결국은 38도선까지 철수했다. 이때 제6사단 장병들은 덕천-성천-곡산-시변리 축선을 따라 철수하여 12월 11일에 동두천 북방의 전곡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중공군이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서울을 목표로 총공세를 실시했을 때, 제6사단은 강력히 저항했으나, 1951년 1월 1일 야간에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서울 창동을 거쳐 1월 6일에는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로 이동했다.
중공군은 2월 12일에 전 전선에서 대규모 공세(일명 중공군의 2월 공세)를 실시했다. 사단은 문막 북쪽의 판대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돌파구 확장을 저지한 후 반격으로 전환했다. 이후 3월 22일부터 북배산-수덕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4월 6일에 사창리 남쪽의 화악산 일대(지암리 부근)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계속 공격하여 21일에 사창리 직전까지 진출하였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제27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4월 23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춘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39묘역-6판-1739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3-ㄷ-07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