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철(李起喆)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6300353
  • 전몰일자 : 19501008

공훈사항

이기철 일등중사는 1927년 7월 24일 경기도 인천시 도원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과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9월 1일 제2사단에 입대하여 제5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5연대(-)는 의정부 북방의 축석령 전투와 창동 방어선에 투입되어 분전했으나, 전투력의 절대적인 열세 속에서 적 전차에 의해 돌파당할 수밖에 없었다. 연대 장병들은 분산 철수하여 28일 광나루에서 한강을 건넜다. 연대는 6월 30일부터 7월 4일까지 말죽거리, 과천, 안양 일대에서 북한군의 남진을 지연하다 수원으로 철수했다.
미군의 투입으로 국군이 중동부전선을 담당하게 되자 제2사단은 7월 13일 문의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적의 남진을 지연시켰다. 7월 16일 이후 제5연대는 보은군 회인 일대와 청주 일대에 배치되어 북한군 제2사단의 공격을 지연했으나, 전투력이 극히 저하되어 7월 25일 해체되어 제11연대에 편입되고 말았다.
제7사단은 8월 20일 제3·5·8연대를 예하부대로 하여 재창설되었다. 민부대에서 제5연대로 개편된 연대는 8월 20일부로 제6사단에 배속되어 군위군 부계 일대의 대율동, 492고지, 527고지 등에서 적과 공방전을 벌이며 적의 남진을 저지했다.
연대는 9월 3일 제8사단에 배속되어 영천 북방의 기룡산과 자양동, 영천 남쪽의 임포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며 적의 남진을 지연했다. 9월 10일부로 제8사단에서 원대 복귀한 연대는 이날 반격을 가하여 영천으로 후퇴하는 적을 추격했다. 9월 12일 연대는 관산을 탈환하고, 13일에는 기계-안강 방면의 적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무학산과 384고지를 점령했다. 이어 연대는 기계 방면으로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격멸함으로써 영천전투의 승리에 크게 기여하고, 낙동강방어선을 지켜 낼 수 있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국군은 9월 22일부로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때 사단은 9월 29일 제2군단에 배속되었고, 제8사단을 후속하여 경주-안동-문경-수안보-충주-장호원을 거쳐 10월 7일 서울에 도착했다. 연대는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하면서 잔적을 소탕했다. 이 일등중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잔적소탕 작전에 앞장서다 10월 8일 북한군 패잔병의 기습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철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5판-2면-17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9-ㄹ-07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