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찬(李起贊)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49588
  • 전몰일자 : 19520714

공훈사항

이기찬 하사는 1923년 10월 29일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서 출생하였다. 이 하사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하사는 1950년 12월 30일에 입대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제30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의 입대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 공세)에 밀려 D방어선(평택-안성-장호원-원주-삼척을 잇는 선)과 E방어선(일명 황우선, 영월-삼척을 잇는 선)에서 적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제9사단은 1951년 3월 5일에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북상하는 북한군 제10사단을 12일부터 18일까지 강원 정선군 송계리 일대에서 포위 격멸했다.
유엔군은 1951년 4월에 접어들어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고 제9사단은 4월 중순 강원 고성군 진부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제9사단은 4월 25일부로 제3군단에 배속되어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중공군은 1951년 5월 16일에 현리 일대의 국군 정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5월 공세를 개시했다. 이 공세로 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마치고개가 중공군에게 선점된 가운데 사단은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전력에 큰 손실을 받은 제9사단은 1951년 5월 29일부로 미 제1군단에 배속되어 포천으로 이동해 와이오밍(Wyoming)선(캔자스선 북방 20km 내외의 철의 삼각지대를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6월 3일부터 11일까지 중공군 제65군 예하 제165사단과 격전 끝에 고대산을 확보했다.
사단은 1952년 전반기까지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전투정찰과 수색·매복작전 등을 지속하였다.
이후 1952년 6월 21일 대규모의 포로획득과 더불어 북한군의 공격 기도를 분쇄하기 위해, 중공군 1개 연대병력 3,500여 명이 방어하고 있던 사단 정면의 500고지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이 하사는 1952년 7월 14일에 수색 작전 중 적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찬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9-ㅈ-02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