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진(李基辰)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08972
  • 전몰일자 : 19521212

공훈사항

이기진 일병은 경상남도 양산군(現 양상시)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및 세부 출생지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을 저지하고 있던 1950년 9월 1일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5연대로 배치되었다.
이기진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작전을 진행 중이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영남 지역 후방지역작전을 완수하고 12월 5일경 춘천 일대로 투입되었다. 사단은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철수하는 아군을 엄호작전 후, 12월 13일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의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었다.
1951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춘천-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고, 태기산 전투(3월), 소양강-인제지역 전투(4월) 등에서 중공군 춘계공세를 저지했다. 이어서 사단은 홍천북방지역 전투(5월), 현리-서화지역 전투(6월)에서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美 제10군단에 배속된 제5사단은 9월 4일부터 40여 일간 강원도 양구 일대 가칠봉 전투에서 1,211고지를 3번이나 점령했다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 끝에 끝내는 동 고지를 적에게 내주었다. 그러나 사단은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내며 박달고개-가칠봉-서희령 전선을 확보하여 해안분지(펀치볼)확보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사단은 이 전선을 10월 20일에 국군 제3사단에 인계하고 양양으로 이동했다. 이후 사단은 제1군단 배속으로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하여, 1952년 1월 23일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면서,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47, 제9사단으로서 적은 월비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그 남쪽의 351고지를 비롯한 제5사단의 전초진지와 주저항선을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마침내 북한군은 7월 10일 오후 10시에 대규모 공격준비사격을 개시한 후 대거 침공을 개시하여 351고지 전초진지의 일부가 돌파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기진 일병이 소속된 제35연대와 제27연대가 3일간 교대로 역습을 실시하여 제35연대가 7월 13일 야간에 同 고지를 탈환했다. 이후 적은 수시로 소규모의 병력을 투입하여 이 고지를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사단은 11월 10일 현 전선을 제15사단에 인계하고 간성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하면서 주변지역에 대한 수색정찰과 매복작전을 병행했다. 이기진 일병은 12월 12일 분대원과 함께 간성 일대 수색정찰 중 적과 조우하여 교전하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진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5-ㅁ-00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