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중(이기중)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84367
  • 전몰일자 : 19510501

공훈사항

이기중 일병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미아동에서 1922년 1월 15일에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1년 2월경 입대 후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8사단 제10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제8사단 10연대 장병들은 혹한과 강설로 진지 구축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적의 주 접근로에 지뢰와 장애물을 설치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하였다. 그럼에도 좌·우측 전선이 돌파되었기에 강원도 홍천군 방면으로의 철수가 불가피하였다. 제8사단 10연대 장병들은 목계리를 경유 황강리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에 임하였다.
신병이 대거 투입된 제10연대를 비롯하여 소속 연대들은 1951년 2월 4일부터 집결과 함께 진격을 개시했다. 아군과 적군은 고지 선점을 위한 수 일간의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고 있었다. 이 전투를 홍성, 횡성 지구 전투라고 부르며, 1951년 2월 4일부터 2월 15일까지 전개되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 중공군의 유인책이었고, 1951년 2월 11일부터 중공군 제4차 공세가 전개되었다. 끊임없는 중공군의 공세에 의해 제8사단 10연대를 포함하여 모든 연대는 고립된 채 후방이 포위되었다. 제8사단 10연대는 포병 1개 대대와 전차 5대로서 포위를 벗어나려 했지만 결국 소부대로 분산되며 철수하게 되었다.
이때 제8사단 10연대는 중공군의 제4차 공세로 장교 약 300여 명과 사병 약 7,000여 명이 전사 및 실종됨에 따라 남은 인원은 3,000여 명에 불과하게 되었다. 큰 전력 손실을 입은 제8사단 10연대는 1951년 3월 대구로 이동하여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어 전력을 재정비하고 부대를 재편성하였다.
제10연대 장병들은 전력보강 이후 1951년 4월 3일부터 1953년 5월 11일까지 호남 지구 무장공비토벌작전을 수행했다. 호남 지구 공비토벌작전과 더불어 4월 16일부터 19일까지는 금산 지구 공비토벌전도 전개되었는데 당시 금산·정읍·순창·부안군 일대에 지역 좌익 및 북한군 낙오병이 합세함에 따라 공비는 약 3,000여 명에 달했다.
이들은 민가, 도로, 행정 시설 등에 대한 유격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비 토벌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 일병은 적탄에 맞아 1951년 5월 1일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중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24판-2면-810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2-ㅌ-00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