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준(李基俊)

  • 군별 : 육군
  • 계급 : 대위
  • 군번 : 13462
  • 전몰일자 : 19500628

공훈사항

이기준 대위는 1924년 5월 11일에 제주도 제주읍 건입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정치·사회적으로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3월 5일에 육사 8기 특별반으로 입교하여 단기간의 군사훈련과정을 수료하고 동년 4월 27일에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제1사단 제1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기준 대위가 부대로 전입했을 때, 제13연대는 경기도 수색에 주둔하고 있었으나, 이후 6월 1일부로 경기도 문산으로 이동하여 개성 우측의 38도선 경계를 인수했다. 연대는 제3대대를 개성 우측지역의 38도선 경비를 담당하게 하고, 연대 본부와 제1·2대대는 문산에 위치하며 교육훈련에 임하게 했다. 당시 이기준 대위는 38도선 경계진지에서 제3대대의 중대장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북한군 제1사단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았다. 적이 평소에 도발하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적의 대규모 포병집중사격으로 통신선이 끊어져 상급부대와는 연락이 두절되었다. 제3대대 장병들은 중과부적으로 단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평시 방어계획대로 임진강을 건너 방어지역으로 철수하기로 했다.
이기준 대위는 소대 및 분대 단위로 임진강을 건너 후방으로 철수하도록 했다. 제3대대 장병들은 문산으로 집결하여 연대 예비로서 부대정비와 재편성을 실시한 후 투입될 준비를 했다. 북한군 제1사단 주력이 6월 26일 야간에 문산 돌출부를 다시 공격하고 전차부대가 1번 국도와 주저항선인 파평산(498고지) 남단으로 공격했다. 문산 일대에 큰 돌파구가 형성되자, 사단에서는 파평산에 배치된 대대 병력들의 퇴로 차단을 염려하여 6월 27일에 최후저항선인 봉일천 지역으로 철수를 명령했다.
제13연대는 6월 27일에 사단의 우측 연대로서 방어정면은 도내리-신산리 간 4km에 배치되어 6월 28일 오전 8시까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전개했다. 이날 새벽에 한강교는 이미 폭파되었고, 아침에 적이 미아리에서 서울 시내로 진출했다는 급보를 접하자, 사단에서는 야간을 이용하여 행주와 이산포에서 한강을 도하, 철수하도록 했다. 그는 중대장으로서 병력들을 지휘하여 적의 공격을 저지하며 철수하고 있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중대장으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준 대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충무무공훈장(훈기번호 2672국)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47판-2면-13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2-ㅋ-02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