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주(李基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81795
  • 전몰일자 : 19530602

공훈사항

이기주 일병은 1926년 12월 8일에 경기도 연백군 용도면에서 출생했다.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할 때인 1950년 12월 30일, 그는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고 제2사단 제31연대로 배치되었다.
이기주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951년 1월 중순, 제2사단은 단양-풍기 축선에서 병참선경계 중이었다. 이후 사단은 안동으로 이동하여 일월산 및 보현산 일대에서 후방지역작전을 실시한 후 4월 28일부로 청평 일대의 전방작전지역으로 이동하여 미 제9군단에 배속되었다. 얼마 후 사단은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격퇴하고, 20일부터 반격하여 6월 15일까지 육단리-적근산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유엔군사령관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각 부대에 공세적인 행동을 명령했다. 이에 제2사단은 8월과 9월에 방어진지 전방의 745고지를 공격하여 탈취했다. 그리고 10월 13일부터 18일까지 실시한 김화-금성진격작전에 참가하여 김화로부터 14km 북쪽의 금성 일대 감제고지들을 탈취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사단은 1952년 3월 10일부로 미 제9군단으로부터 배속해제 되어 사창리 일대로 이동했다.
제2사단은 1952년 6월 1일부로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그리고 10월 14일부터 군단의 작전계획에 의거 중공군 제15군 예하 부대가 배치된 김화 북쪽의 ‘저격능선’을 공격하여 탈취했다. 이후 중공군의 역습으로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가 이곳에서 42일 동안 계속되었다. 결국은 아군이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저격능선을 탈취했다.
제2사단은 12월 1일부로 군단 예비로 전환하여 사창리에서 FTC훈련을 실시했으며, 다시 1953년 1월 30일에 미 제3사단의 방어작전지역을 인수하여 철원 고대산 전방의 독서당리, 중강리, 하진명동 일대를 점령했다. 이기주 일병이 소속된 제31연대는 사단의 우측연대로서 중강리-하진명동을 잇는 선에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소대는 6월 2일에 방어지역 전방으로 수색정찰을 나갔다가 적 매복조를 발견하여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주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23묘역-2판-716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1-ㅎ-06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