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종(이기종)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 전몰일자 : 19501226

공훈사항

이기종 일병은 1929년 3월 25일에 경상남도 부산시 동구 좌천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7월 초순, 충남 온양의 제18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연대 통신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가 옹진반도로 출동할 때, 그는 제6사단 직할부대인 통신대로 전속되었다.
제6사단 장병들은 1950년 6월 25일에 북한군이 기습남침을 했을 때 체계적인 방어로 춘천-홍천 북방에서 3일간이나 저지하고 철수했다. 이후 사단은 원주-충주-문경 축선에서 7월 한 달 동안 북한군의 공격을 지연시키고, 낙동강방어선으로 이동하여 8월 및 9월 초순까지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부터 낙동강 선에서부터 반격을 실시했다. 이에 제6사단은 함창-보은-괴산-충주-원주-춘천 방향으로 공격하여 10월 5일에는 38도선을 돌파했고, 계속 북진하여 10월 19일에는 성천을, 23일에는 희천을 점령했다. 유엔군은 10월 24일에 압록강을 향한 1차 총공세를 시작했다. 이에 사단은 압록강 변의 벽동 및 초산 방향으로 진격했다. 제7연대의 선두부대는 10월 26일에 초산을 점령했으나, 이때 동림산 일대에 은밀히 매복하고 있던 중공군이 국군과 유엔군의 후방을 차단했다. 사단은 겹겹이 싸인 중공군의 포위망을 돌파하면서 130km 되는 험준한 산길을 통해 10월 31일에 개천에 도착했다. 이후 11월 14일에 영원-덕천으로 이동하여 제2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이기종 일병이 소속된 통신소대는 사단과 연대 간의 통신소통을 지원했다.
유엔군은 11월 24일에 압록강과 두만강을 향한 2차 총공세를 시작했다. 이번에도 중공군은 은밀히 산속에 은거해 있다가 공격 2일차인 11월 25일 야간부터 아군의 후방을 차단했다. 이에 당황한 유엔군은 평양을 거쳐 38도선으로 철수를 단행했다. 당시 제6사단은 북창-시변리-고랑포 지역으로 철수하여 12월 중순에 전곡-동두천 축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하였다. 이기종 일병이 소속된 통신소대는 방어진지 편성 간에 사단과 연대 간에 유선망을 개통하여 원활한 소통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통신소대는 12월 26일에 통신선 점검을 나갔다가 적 침투부대의 기습공격을 받고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종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116-ㅍ-02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