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응(李基應)

  • 군별 : 육군
  • 계급 : 대위
  • 군번 : 20244
  • 전몰일자 : 19530612

공훈사항

이기응 대위는 1932년 8월 16일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1951년 7월 중순에 국가의 간성이 되기 위한 큰 뜻을 품고 광주의 육군보병학교로 입교하여 단기간의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1951년 9월 24일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기응 대위가 소속된 연대는 1952년 5월 금성-북한강 동안까지의 전선을 인수하여 동부 전선을 방어하고 있었다. 이 대위의 지휘하에 연대병력은 화천 일대 금성천 북안 일대에서 정찰 활동을 수행하던 중 북한군과 마주치게 되어 교전을 벌여 중공군 여러 명을 사살하는 수훈을 세웠다.
이후 이기응 대위와 연대병력은 수도고지 전투를 수행하였다. 수도고지 전투는 무더웠던 1952년 여름에 시작하여 10월까지 군사분계선 설정에 대한 휴전협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하게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중공군의 전차포격과 6천여 발의 포탄이 고지 일대에 쏟아지는 가운데 이기응 대위의 지휘 아래 장병들은 적의 진내로 돌입하였다. 접전이 벌어지기 직전, 중공군의 전차포 사격을 받아 엄체호가 무너지면서 많은 장병들이 죽거나 부상을 당하였다. 이 대위는 무너진 흙더미를 헤치고 나와 바로 앞에 있는 적중에 뛰어들어 수류탄과 총검으로 격렬하게 싸웠다. 이날 밤 10시경 아군의 진내 사격이 가해지자 중공군은 퇴각하기 시작하였고 이 대위와 장병들은 무사히 본진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1953년 초, 휴전회담이 여전히 중단된 상황에서 전선은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기응 대위와 연대병력은 1953년 5월 14~16일 금성 서남쪽 7㎞ 지점 직목동 일대에 있는 샛별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또한, 5월 23~24 금성 서남쪽 4㎞지점에 있는 회고개 전투에서 중공군을 물리쳐 금성 돌출부 일대의 주저항선을 고수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 결과 사단은 6월 하조리에서 회고개까지 주저항선에 제1연대와 제26연대를 배치하고 제1기갑연대를 예비로 확보할 수 있었다.
이 대위는 수도고지-지형능선전투 등 김화 및 금성 지구의 고지쟁탈전에서 모범을 보이며 앞장서서 솔선수범하는 훌륭한 중대장이었다.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기응 대위는 1953년 6월 12일 김화 지구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응 대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15묘역-1판-78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7-ㅁ-05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