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윤(李起潤)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6500644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기윤 이등중사는 1925년 6월 24일에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에서 출생했다. 당시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에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러한 시기에 그는 군 입대를 결심하고, 1949년 6월 25일에 서울 용산의 제1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병참특기를 받아 연대 군수과에 배치되었다.
제17연대는 수도경비사령부에 예속되어 있었고, 그해 11월 15일에 옹진반도로 이동하여 옹진지구전투사령부에 예속되어 제2연대로부터 은파산 방어 임무를 인수하였다. 은파산은 1949년 7월에 북한군의 선제공격으로 빼앗겼으나, 10월 15일에 제2연대의 반격으로 다시 탈취한 지역이다. 이후 옹진반도는 제17연대와 제18연대가 방어 임무를 수행하다가 북한군의 도발이 줄어들자, 1950년 3월 1일부로 제18연대마저 철수하고 옹진반도에는 제17연대만 남아 방어하게 되었다.
이기윤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64km의 정면을 담당했는데, 예하 2개 대대(1, 3대대)를 전방에 배치하고, 1개 대대(제2대대)는 예비로서 옹진 부근에 집결되어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북한군(제6사단 14연대와 제3경비여단 투입)은 전면적인 포격과 동시에 공격하여 아군의 전방대대 방어진지를 포위하려고 했다.
제17연대 장병들은 1949년의 ‘은파산전투’와는 차원이 다른 적의 강력한 대규모 공격을 받고 병력의 열세와 지형의 불리한 조건에서도 적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다. 연대는 오전 7시에 옹진 정면이 위급하게 됨으로써 예비대를 투입하여 적의 공격을 격퇴하기로 했다. 북한군은 대대 간의 전투지경선인 취야-양원, 취야-강령 국도를 향해 공격하여 돌파함으로써 아군 방어지역은 오후 1시부터 동서로 양분되고 말았다.
이기윤 이등중사가 소속된 군수과는 오후 2시에 연대로부터 강령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연대 참모부 장병들이 철수하는 도중에 적의 포병 공격은 점점 더 가까워짐을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 제17연대 장병들은 전투력의 열세 속에서 다음날 아침 해군 LST가 도착하여 철수할 때까지 지연전을 감행했다. 그는 적이 기습적으로 공격한 첫날인 6월 25일에 사곶항으로 철수하던 중 적의 총탄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윤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5판-2면-25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6-ㅊ-02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