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원(이기원)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186654
  • 전몰일자 : 19530721

공훈사항

이기원 일등중사는 1925년 9월 16일에 경기도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3차 공세로 서울에서 1·4후퇴하던 1951년 1월 5일에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경남 산청에 주둔한 제11사단 제9연대에 배치되었다.
이기원 일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2월 중순, 제11사단은 지리산 일대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후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성공적으로 실시하여 1951년 4월로 접어들면서 공비들의 세력은 현저히 약화되었다. 이에 사단은 4월 6일부로 공비소탕작전은 제8사단에 인계하고, 강원도 양양으로 이동하여 전방의 방어작전지역을 담당했다.
이기원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11사단은 ‘공산군의 4월 및 5월 공세’를 격퇴 후 반격하여 6월 중순에는 거진-건봉령-건봉산-향로봉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젼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을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이에 장병들은 방어진지 보강과 교육훈련, 그리고 수색작전 활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얼마 후 사단은 11월 17일에 수도사단으로부터 월비산 방어지역을 인수한 후 북한군의 공격을 받아 11월 24일까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에게 빼앗겼고, 이후 사단 장병들은 1953년 6월까지 큰 전투는 없었다.
이후 제11사단은 1953년 6월 10일에 건봉산-향로봉 일대의 방어진지를 제21사단에 인계하고, 화천 일대로 이동하여 2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그런데 휴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7월 13일 야간에 중공군이 중동부전선의 금성돌출부를 탈취하기 위해 대대적인 공격을 했다.
이기원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9연대는 7월 13일에 제6사단에 배속되어 금성돌출부를 형성하고 있는 교암산전투에 참가했다. 제9연대는 중공군의 측방공격을 차단하기 위해 7월 14일 새벽에 하고개-월봉산(482고지)에 배치되어 서측방 방어를 강화했다. 그리고 7월 15일에는 적근산-삼현지구에 대한 공격임무를 부여 받고, 7월 16일부터 공격하여 7월 18일에 602고지와 금성천 만곡부를 연하는 선까지 진출함으로써 백암산 정면으로 침입한 중공군의 보급로를 완전히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중공군은 7월 20일에 즉각적인 역습으로 602고지는 다시 공격하여 쟁탈전이 벌어졌고, 7월 21일까지 이어진 전투로 중공군이 탈취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원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4면-124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1-ㅎ-09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