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원(李基元)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1105090
  • 전몰일자 : 19511019

공훈사항

이기원 이등상사는 1928년 2월 6일에 경기도 양주군 상대면에서 출생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광복을 맞이했으나 정부수립 준비로 혼란스러웠던 1948년 3월 18일, 그는 경기도 양주군 공덕리에 주둔한 제1연대로 입대했다. 이후 제7연대가 청주에서 춘천으로 투입될 때, 그는 제1연대에서 제7연대로 전속되었다. 당시 제7연대는 화천-춘천 축선에 대한 방어임무를 수행했다.
이기원 이등상사가 소속된 제6사단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전면 남침한 북한군의 공격을 맞아 3일간 춘천을 지키고 철수하여 원주-충주-문경-함창을 연결하는 축선에서 7월 한 달 동안 지연전을 실시했다. 이후 8월과 9월은 낙동간 선의 용기동부터 의흥-신녕으로 후퇴하면서 북한군의 총공격을 격퇴했다. 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일제히 반격을 개시했다. 당시 제6사단은 신녕 북방에서 조림산을 돌파하고, 거침없는 진격으로 10월 5일에 춘천 북방에서 38도선을 돌파하고, 10월 26일에 선두부대가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이때 유엔군은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총공세로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했으며, 제6사단은 동두천 북쪽의 전곡-백의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제6사단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대규모 중공군의 공격을 받았고, 다음 날인 1951년 1월 1일 오전에 적들의 측방공격에 위협을 느껴 철수했다. 1월 7일에 장호원 부근의 죽산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했으며, 2월 초순에 문막 북쪽의 판대리 일대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2월 12일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하여 4월 6일에 화악산을 점령했고, 21일에 사창리까지 진출했다. 이후 사단은 중공군의 4월 공세로 용문산 일대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고, 이곳에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격퇴하고, 5월 20일부터 반격으로 전환하여 계관산-북배산-지암리-춘천 동북방-화천 방향으로 공격하여 5월 28일에 화천을 점령했다.
이기원 이등상사가 소속된 제6사단은 6월 5일부터 643고지-992고지-취봉 방향으로 공격하여 6월 10일에 취봉을 탈취했으며, 이후 적근산-주파령을 잇는 선에서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부산의 제3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는 장기간 치료를 받았으나 부상이 워낙 심해서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10월 19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원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23묘역-3판-749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7-ㅁ-00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