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우(이기우)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2706036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이기우 일병은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선으로 철수를 거듭하고 있을 때인 1950년 7월 19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출생 일자 및 출생지 미상).
이기우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6·25전쟁이 개시된 이후 6개월 동안 전황의 추이에 따라 임진강-낙동강-청천강으로 이동하였다가 다시 임진강변으로 철수함으로써 두 번이나 이 지역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게 되었다. 사단은 북한군의 주공이 예상되는 고랑포 정면 임진강 남쪽의 장파리-마포리-도감포 일대에 주저항선을 구축하였다. 이기우 일병과 연대병력은 방어가 취약한 전방연대의 전투지경선 부근을 보강함과 동시에 유사시 전방연대들의 철수를 신속히 엄호하기 위하여 적성 남쪽의 마지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부대 장병들은 방어진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지뢰와 철조망을 가설하는 동안 수색대를 강북으로 파견하여 적정을 탐지하는데 주력하였다.
1950년 12월 31일 임진강 남쪽에 교두보를 확보한 중공군은 후속 부대를 도하시켜 연대를 추격하기 시작하였고, 또 일부 중공군은 적성 남쪽 진지로 접근하며 추격해왔다. 이로 인해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사격도 하지 못한 채 방어진지 일부를 돌파당하였고, 중공군이 내륙 깊숙이 침투함으로써 사단의 우전방 지역에 돌파구가 형성되었다. 이때부터 이 일병과 장병들은 밤새도록 돌파구 확대를 기도하는 중공군을 맞아 총력전을 펼쳤다.
1951년 1월 1일 이기우 일병과 연대병력은 두포리-금곡리-무건리 선에 배치되어 중공군의 돌파구 확대를 저지하였다. 이 일병과 장병들은 노고산 일대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중공군의 돌파구 확대를 저지하고자 새벽까지 고군분투하였으나 역부족이었으므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고양리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기우 일병은 1951년 1월 1일 두포리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기습을 받아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3판-39면-21539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10-ㅊ-08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