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완(이기완)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218388
  • 전몰일자 : 19530627

공훈사항

이기완 하사는 1926년 10월 17일에 경상남도 부산시 남면 좌동리(現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동) 672번지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포로교환문제 등으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6월 10일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6연대로 배치되었다.
이기완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고지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제1군단 배속으로 동해안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전선방어에 임하고 있었다. 사단은 전초진지인 351고지를 몇 차례의 격전을 치르면서 확보했으며, 이 전선을 1952년 11월 10일부로 제15사단에 인계하고 육본 직할로 강원도 고성군 간성에서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했다.
1953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4월 15일 화천군 임남면 백암산 동북방 제3사단 전선을 인수하여, 949고지-973고지-883고지를 잇는 전선을 방어하면서 주진지와 전초진지 보강을 실시했다. 이 무렵 중공군은 대규모 하계 공세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제1차 공세 제1단계는 1953년 5월 10~15일 중대급 이하의 소규모 공격, 2단계는 5월 20~30일 대대급 이하의 목표에 대한 공격이었다.
이에 따라 사단 전방의 중공군 제60군 제180사단은 5월 12일에 제5사단의 전초진지인 689고지(텍사스고지) 및 오봉능선과 삼각봉을 공격해 왔다, 이에 사단은 5월 17일까지 4차례의 역습을 실시하며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했다.
중공군은 6월 10일부로 본격적인 하계공세를 시작하면서 제60군 예하 제180・181・203사단을 투입하여 인해전술을 펼치며 파상적인 공격을 가해 왔다. 사단은 주저항선을 빼앗기고 북한강 동・서안의 등대리-후동-널우골을 잇는 선까지 후퇴하여 新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때 이기완 하사가 소속된 제36연대는 6월 13일 북한강 상의 교량 부근으로 이동하여 사단의 철수를 엄호하고, 북한강 동안 황병동(319고지)-널우골(748고지)에 방어편성을 실시했다.
그 후 사단은 군단 우측의 담당지역을 제3사단에게 인계하고 김화 일대 감우리에 집결하여 6월 말까지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실시했다. 이기완 하사는 감우리에서 분대원을 통제하며 집결지 행동 중 6월 27일 기습 침투한 적과 교전을 하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완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14면-856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4-ㅅ-073)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