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옥(李起鈺)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5827
  • 전몰일자 : 19501007

공훈사항

이기옥 일병은 경상남도 부산시 동구 범일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4월 공세’로 위기에 처했던 1951년 3월 초, 그는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제3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기옥 일병이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 제2사단은 중공군의 5월 공세를 효과적으로 저지하고 38도선을 향해 반격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사단의 반격작전은 6월 중순까지 진행되어 38도선을 지나 육단리-적근산(1073고지)까지 진출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후 쌍방 간에 휴전협상이 논의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되었다. 유엔군사령부에서는 7월 10일부터 휴전협상 본회담이 시작되었으나, 진도가 지지부진하자 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부대별로 공격작전을 감행하여 적에게 최대한 군사적 압박을 가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제2사단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방어진지 전방의 감제고지인 745고지를 탈취하기로 했다. 사단은 8월 2일 공격을 개시하여 8일까지 뺏고 빼앗기는 고지쟁탈전이 계속되었으나 결국 확보하지 못했다. 이후 9월 1일에 다시 공격을 실시하여 3일까지 치열한 공방전 끝에 탈취했다.
이후 이기옥 일병이 소속된 제32연대는 9월 21일에 진현리-방동부근의 633고지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받았으나 격퇴했다. 전선은 다시 소강상태가 계속되면서 장병들은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 및 매복작전을 강화하였다. 그는 소대원들과 함께 10월 7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조를 만났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전사했다.(전몰일자 1950-10-07은 아직 제32연대가 창설되지 않아 1951-10-07로 조정하였음)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옥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9판-2면-16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7-ㅌ-02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