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영(李起榮)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752950
  • 전몰일자 : 19521025

공훈사항

이기영 하사는 1928년 1월 25일에 경기도 화성군 일왕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유엔군과 공산군이 휴전협상이 지루하게 진행될 때인 1951년 9월 30일에 적근산 일대의 제2사단으로 현지에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7연대로 배치되었다.
제2사단은 1951년 10월 말에 적근산-육단리를 잇는 선을 주방어진지로 편성하고 전초진지는 금성 서남쪽 직목동과 522고지에 설치했다. 이기영 하사가 부대로 전입하기 직전인 10월 13일부터 김화-금성진공작전을 실시하여 10월 18일까지 방어선 전방의 주요 고지들을 확보했다. 이후 유엔군과 공산군 간의 휴전협상은 군사분계선 문제와 포로교환 문제로 지연되었고, 전선은 소강상태가 장기간 계속되었다. 이에 사단은 몇 번의 부대교대를 거쳐 1952년 6월 1일에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그리고 6월 30일부로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를 잇는 방어진지를 미 제40사단으로부터 인수했다.
얼마 후 제2사단은 군단명령에 의거 오성산 남쪽의 중공군 전초지역인 저격능선을 공격하기로 계획했다. 저격능선은 방어진지 전방의 주요 감제고지로서 오성산을 공격할 때 발판을 제공할 수 있는 요충지였지만, 지대가 아군 방어지역보다 높아 공격하기에 어려운 지역이었다. 그리고 저격능선은 1개 대대가 공격할 수 있는 넓이의 지역이었다. 이에 사단은 저격능선을 탈취하기 위해 연대별 교대로 공격하기로 했고, 연대에서는 대대별로 교대하면서 공격하기로 했다.
이기영 하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10월 14일에 사단의 선두부대로 공격을 개시하여 적의 강력한 저항으로 큰 피해는 입었지만 저격능선을 탈취했다. 이에 오성산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중공군 제15군이 그날 밤부터 역습을 감행하였고, 이후 피아간에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끈질기게 이어졌다. 연대는 10월 20일에 저격능선을 탈취한 후 중공군의 공격을 수차례에 걸쳐 격퇴했다. 그리고 10월 25일에 저격능선을 방어하던 중 적의 공격을 받아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워 저격능선을 탈취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나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영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8077 육)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0-ㅋ-06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