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영(李起榮)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15262
  • 전몰일자 : 19500925

공훈사항

이기영 중위는 경기도 용인군 외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49년 7월 중순에 위생 2기로 입소하여 소정의 군사교육훈련을 수료한 후 10월 5일에 소위로 임관했다. 그리고 용산에 주둔한 제17연대로 배치되어 연대 위생장교로 보직되었다. 이후 연대는 1949년 11월 15일부로 옹진반도로 투입되어 제2연대로부터 38도선 경계 및 방어임무를 인수했다.
이기영 중위가 소속된 제17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옹진반도에서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육본 명령에 의거 해군에서 지원한 LST로 인천으로 철수했다. 이후 7월 중순 지연작전 시에 화령장 전투에서 북한군 제15사단 예하 2개 연대를 궤멸시키는 전과를 획득하여 계속된 후퇴로 저하되었던 장병들의 사기 앙양에 크게 기여했다. 낙동강방어선에서는 포항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되어 8월 11일에 기계-안강 지역에 투입되어 9월 12일까지 거의 한 달 동안 북한군과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결국 포항지구전투사는 북한군 제12사단의 경주 진출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제17연대는 육군 중 유일하게 인천상륙작전부대로 선정되어 안강전투를 마치자마자 9월 13일에 부산으로 이동하여 상륙함정에 승선한 후 9월 17일에 인천에 후속 상륙했다. 이후 연대는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인천-서울을 잇는 도로 남쪽을 담당하며 진격하여 김포비행장을 거쳐 9월 25일에 신사리에서 도하공격으로 남산을 점령하고, 계속해서 서울의 동쪽 지역을 탈취했다. 그리고 국군과 유엔군 주력이 38도선을 돌파하여 압록강을 향해 진격할 때, 제17연대는 서울에 남아 주요시설 경계와 잔적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제2사단은 7월 20일 함창에서 해체되었다가 11월 7일 서울에서 제17, 제31, 제32연대를 예하 부대로 재창설되었다. 이기영 중위는 제17연대 의무장교에서 사단 직할부대인 의무대로 전속되었다. 이후 제2사단은 가평으로 이동하여 철원, 의정부, 구화리 일대에서 유엔군의 후방교란을 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했다. 이기영 중위가 지휘하는 의무소대는 제17연대를 직접 지원했다. 의무소대는 11월 25일에 적 침투부대의 기습을 받고 즉각 응사했으나, 이날 전투 중 그는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1950-09-25은 아직 제2사단이 창설되지 않은 시기이므로 1950-11-25로 전몰일자를 조정했음)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영 중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7판-3면-11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2-ㄴ-08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