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영(李基英)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4517
  • 전몰일자 : 19500904

공훈사항

이기영 일병은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지연전으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던 1950년 7월 중순, 경북 대구의 육군 제25교육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8월 중순에 카투사(KATUSA)로 분류되어 미 제1기병사단 제5기병연대에 배치되었다.
이기영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8월 중순, 미 제1기병사단은 왜관 일대의 주요 감제고지에 배치되어 대구로 향하는 1번 국도를 통제하여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있었다. 당시 북한군 제10사단 주력이 8월 12일부터 14일까지 1번 국도가 아닌 현풍 서북쪽 용포로 낙동강을 도하하려 했으나, 미 제7기병연대에 의해 격퇴되었다. 북한군 제3사단 예하 제7연대는 8월 9일 새벽 3시에 성주 방면에서 왜관 남쪽의 미 제5연대 정면으로 도하하여 금무봉(268고지)을 점령했으나, 8월 10일에 사단 예비인 제7기병연대가 반격으로 탈환했다.
북한군 제3사단의 1개 연대는 제105전차사단의 지원 하에 8월 14일에 수암산 전면에 배치되어 있던 국군 제1사단 제15연대 정면을 기습적으로 도하공격에 성공했다. 적들은 8월 15일에 계속해서 미 제1기병사단과의 전투지경선 사이로 공격하여 미 제1기병사단 지역인 왜관 동북쪽 303고지를 점령했다. 이 고지는 왜관 일대의 철도, 도로 등을 감제할 수 있는 중요한 고지였다. 이에 이기영 이병이 소속된 제5기병연대는 8월 16일에 항공 및 포병화력 지원하에 반격하여 8월 17일에 이 고지를 탈환했다. 이후 계속되는 북한군의 공격을 맞아 치열한 전투 끝에 303고지를 지켰다.
미 제1기병사단은 8월 31일부로 국군 제1사단으로부터 다부동지역을 인수하여 대구로 향하는 주요 축선인 1번 국도 축선과 다부동 축선을 동시에 담당했다. 북한군은 9월 2일 오후 6시를 기하여 대구 북방에서 총공세(일명 9월 공세)를 실시했다. 낙동강방어선의 서남부 지역인 낙동강돌출부와 마산지역이 적의 공격으로 위험해질 때, 미 제7기병연대는 상급부대 명령에 의거 수암산(518고지)를 공격하여 압력을 분산하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오히려 북한군 제3사단이 수암산 일대에서 칠곡 방향으로 우회 돌파에 의해 제5, 8기병연대는 칠곡 북쪽의 188고지-401고지 선으로 철수했다. 이기영 일병은 9월 4일 188고지 전투에서 미군 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싸워 적의 공격을 격퇴했으나,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영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8판-3면-25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9-ㅋ-05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