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영(李基營)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724

공훈사항

이기영 순경은 1925년 1월 10일 전북 완주군 조춘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북도경 정주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정읍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순경은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고 군경부대가 남쪽으로 후퇴함에 따라 정주경찰은 정주-부안, 정주-전주, 정주-임실을 잇는 주요 도로 통제와 군산항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한강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자 전북경찰국은 비상경비총사령부 지시에 따라 각 서(署)의 일부 병력을 차출하여 충남지구의 지연전에 참가하도록 조치했고, 잔여 경찰병력으로 전투부대를 편성하여 북한군의 남진에 대비했다.
북한군 제6사단은 호남지역에 투입되어 7월 16일 금강을 도하하고 곡성-전주 방향으로 남진했다. 이에 육군본부는 7월 17일 서해안지구 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신편 제7사단(제3연대·제9연대)과 경찰을 배속하여 지역방어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북한군은 7월 18일 강경을 점령하고 이어서 7월 20일 곡성을 점령했고, 그 중 일부 부대는 김제로, 일부는 전주로 남하함에 따라 전북도경은 이날 남원으로 철수했다. 7월 20일 전주가 적의 수중에 들어가자 남원에 집결한 전북도경과 전북 북부지역 경찰은 임실 방면에서 남하하는 북한군에 대비하기 위해 육군부대와 합동 방어태세를 갖추고, 운봉에 진출한 함양경찰 병력과 합세하여 육십령 고개에 차단진지를 구축했다.
북한군 제4단은 7월 22일 정읍을 돌파하여 광주 방면으로 진격했다. 정주경찰은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다가 중과부적으로 칠보산과 입암산 일대로 들어가 게릴라전을 전개하며 적의 동향을 파악하고 적에게 타격을 가했다.
7월 24일 이 순경은 입암면에서 동료 경찰들과 함께 적정을 수집하며 적의 후미부대를 타격했다. 교전은 약 2시간 동안 벌어졌으며, 이 순경은 적을 격멸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을 맞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영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7-ㅇ-01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