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영(李基榮)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21217

공훈사항

이기영 순경은 1924년 12월 17일 전남 광양군 옥룡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남도경 광양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광양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고 군경부대가 남쪽으로 후퇴함에 따라 광양경찰은 광양-순천, 광양-하동, 광양-사천을 잇는 주요 도로 통제, 주요 시설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한강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자 전남도경은 전투경찰로 재편성되어 호남지역으로 진격하는 적의 공격을 지연시켰다.
비상경비총사령부는 7월 31일 진주에서 경남경찰, 전남·전북경찰 혼성병력 4천여 명으로 전투부대를 재편성했고, 경찰부대는 미 제25사단 및 한국 해병대와 합동작전을 전개했다. 8월부터 9월까지 이 순경이 소속된 경찰부대는 고성·창원·함안·진동에서 북한군 제6·7사단과 치열한 전투를 하면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인천상륙작전과 국군·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광양경찰은 10월 초 광양경찰서를 수복하고 지역 내 치안유지와 잔적소탕작전을 전개했다. 국군·유엔군의 총반격으로 퇴로가 차단된 북한군은 가까운 산지로 들어가 공비들과 합류하여 게릴라 활동을 전개했다. 이에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공비섬멸 작전기간(1차: 1951.3.10-4.10, 2차: 1951.4.15-5.5, 3차: 1951.7.15-8.15)을 설정하여 전국적으로 공비섬멸을 하도록 했다. 이 순경은 제1-제3차 공비섬멸작전에 참가하여 공비섬멸에 크게 기여했으며, 이하 태전사(태백산지구전투사령부) 부대에 편성되어 제1기(1951.10.02.-12.14), 제2기(1951.12.16.-1952.01.04.), 제3기(1952.01.04.-01.31.)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1952년 9월 13일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공비토벌작전 지휘권의 단일화를 기해야 한다는 요청에 따라 태전사와 지전사를 해체하였다. 이 순경은 광양경찰서로 복귀하여 치안유지, 주요시설 경비, 오열 색출, 잔적소탕작전 임무를 수행했다. 12월 17일 광양 옥곡에 수 명의 공비가 출현하자 광양 기동타격대가 출동하였으며, 이 순경은 공비들을 격멸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의해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영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00-ㅊ-03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