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열(李起烈)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215885
  • 전몰일자 : 19521129

공훈사항

이기열 하사는 경상북도 금릉군 감문면에서 1928년 3월 5일에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일자를 고려할 때 이 하사는 1952년 5월경에 입대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전입할 당시 제8사단 21연대는 미 해병대 제1사단으로부터 노전평 북방 854고지, 812고지 작전지역을 인수하여 1952년 5월 1일부터 5월 5일까지 심리전을 벌였다. 이후 제21연대는 1952년 9월까지 북한군과 대치한 상황에서 대북방송을 통한 심리작전을 펼침과 동시에 항공기로 폭격을 가하며 진지 보수와 적정파악을 위한 소규모 수색작전 또한 진행했다.
북한군은 1951년 9월에 뺏긴 854고지에 대해 공격을 기도하고 있었고 이어 1952년 9월 국군의 812고지와 854고지에 14,288발의 포탄을 발사했다. 이에 피아간에 백병전이 전개되었고 제8사단 제21연대 장병들은 끊임없이 침입하는 북한군으로부터 854고지를 빼앗겼다. 하지만 제8사단 제1, 3중대 및 전차중대가 노출된 측면을 사수하며 다시 확보했다.
결국 제21연대를 포함한 제8사단 연대들은 근접전을 전개하며 북한군을 격퇴하고 주저항선을 확보하였고 적의 돌파구를 완전히 봉쇄하며 역습을 통해 고지를 완전히 재선점할 수 있었다. 이후 제8사단은 북한군과 대치한 상황에서 진지 보수에 치중했다. 제8사단이 진지 보수와 수색정찰을 강화하는 와중 1952년 9월 21일 북한군 제45사단의 공격을 받았고, 적군은 일시적으로 854고지를 점령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8사단 장병들은 미 해군, 공군의 화력지원을 받아가며 1952년 9월 21~22일간 북한군 제45사단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었다. 제8사단은 전투 종료 이후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에서 부대를 정비했다. 1952년 10월 25일 제8사단은 강원도 김화군으로 이동하여 수도사단으로부터 수도고지 일대의 작전지역을 인계했다. 이 과정에서 이 하사는 적의 총탄에 큰 부상을 입고 1952년 11월 29일 안타깝게도 사망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열 하사의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7427 육)을 추서하고 그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7판-5면-24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4-ㅅ-00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