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안(李起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20065
  • 전몰일자 : 19510603

공훈사항

이기안 일병은 1928년 6월 5일에 경상남도 창원군 웅천면에서 출생했다. 국군 및 유엔군이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진출했으나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후방이 차단당해 후퇴를 거듭하던 1950년 11월 말, 그는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당시 재창설된 제2사단 제31연대로 전속되었다.
이기안 일병이 부대로 전입해 왔을 때인 12월 하순에 제2사단은 동두천 북방 38도선의 양문리-탑두울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얼마 후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대규모 중공군의 총공세를 받아 중과부적으로 방어진지에서 하룻밤도 버티지 못하고 와해되어 다음날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청평-여주를 거쳐 7일에 충주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충주-단양 간 병참선경계를 실시하다가 2월 13일 안동 일대로 이동하여 후방교란을 일삼던 북한군 패잔병에 대한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이기안 일병이 소속된 제31연대는 3월 중순에 속리산 일대로 이동하여 잔적들을 소탕했다.
제2사단은 4월 28일에 청평으로 이동하여 미 제9군단에 배속되었다. 당시 군단은 중공군의 4월 공세를 저지하고 조심스럽게 38도선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5월 10일을 전후하여 중공군의 활동이 현저히 증가되는 공세징후들이 포착되어 방어로 전환했다. 예상대로 중공군의 공세가 5월 16일부터 시작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 북방-용문산-대관령-강릉을 잇는 선에서 저지시키고 20일을 기해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제2사단은 5월 24일부터 일제히 공격으로 전환하여 청평-가평을 연결하는 도로의 감제고지에 배치된 적들을 제압하며 38도선을 향해 전진했다. 이기안 일병이 소속된 제31연대는 6월 3일에 선두에서 진격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안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9-ㄷ-01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