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식(李起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7110
  • 전몰일자 : 19501230

공훈사항

이기식 일병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던 1950년 9월 초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공병대로 배치되었다.
한편 국군은 1950년 7월 5일경 부대를 재편성할 때에 제5사단을 해체하고, 제5사단 병력들은 제1, 2사단으로 통합했다. 그 후 제5사단은 10월 8일에 대구에서 제27, 35, 36연대 등 3개 연대와 수색대, 공병대, 통신대를 예하부대로 재창설되었다. 이후 10월 30일에 제20포병대대가 육군본부 직할에서 사단으로 배속되었다.
이기식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하고 있었으며, 북으로 도주하지 못한 북한군 패잔병들이 산간지역으로 숨어들어, 아군의 후방을 교란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특히 일부 패잔병들은 지방 공비들과 합세하여 전투력을 재정비했으며, 아군의 병참선을 차단하고 보급시설을 습격하는 한편, 주민들의 식량과 가축을 약탈하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따라 제5사단은 재창설 후 10월 13일부터 영남 일대의 적 패잔병 및 게릴라를 토벌하는 작전에 투입되어 11월 22일까지 후방지역작전을 수행했다. 이 작전에서 아군 6명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으나, 적 936명을 사살하고 126명을 생포하는 등의 전과를 올리면서 후방지역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그 후 사단은 작전지역을 제9사단에 인계 후 춘천 지역으로 이동하여, 12월초까지 후방지역작전을 계속했다.
이와 같이 이기식 일병이 소속된 제5사단이 적 게릴라 소탕작전을 실시하던 시기에 국군과 유엔군은 북진작전으로 압록강을 향해 진격했으나,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단은 12월 5일경 춘천 전방지역 17번 국도 상으로 투입되어 철수하는 부대에 대한 엄호작전을 실시했다.
사단은 엄호작전을 실시한 후 12월 10일부로 춘천 동북방 탑두울-배후령 간을 점령하여 중공군의 공세에 대비하고 있었다. 이기식 일병은 12월 30일 춘천 북방 방어진지에서 주요 목 지점에 철조망을 설치하던 중 적 포탄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식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0판-1면-00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1-ㅅ-059)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