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식(李基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02757
  • 전몰일자 : 19500915

공훈사항

이기식 일병은 경상북도 달성군 월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군의 기습침략으로 방어체계가 무너져 후퇴하던 1950년 7월 중순,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 병으로 분류되어 미 제24사단에 배치되었다.
이기식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8월 중순, 미 제24사단은 창녕과 영산 지역에 낙동강을 장애물로 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한편 북한군 제4사단이 영산 지역을 돌파하여 미 제8군의 퇴로인 밀양ᐨ부산을 차단하려고 했다. 이에 사단은 8월 5일부터 18일까지 치열한 전투를 치룬 끝에 북한군 제4사단의 공세를 격퇴했다.
이기식 일병은 미 제24사단 장병들과 의사소통은 잘 안 되었지만 서로 협조하며 용감히 잘 싸웠다. 그가 소속된 대대는 8월 7일 아침 적의 공격거점에 대해 역습을 실시하였으나 실패했다. 이는 혹심한 더위에 식량과 식수마저 부족한 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유엔 공군기의 오인사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북한군은 이 틈을 이용하여 낙동강 차안의 클로버고지를 점령한 후 오봉리 능선으로 진출했다. 클로버고지 및 오봉리능선은 아군 후방의 주보급로는 물론 밀양까지도 관측이 가능한 요충지였다.
이기식 일병이 소속된 미 제24사단은 8월 18일에 강력한 항공 및 포병 화력을 지원받아 클로버고지에 대해 대대적인 역습을 했다. 미 제8군의 예비대인 국군 제17연대, 미 제2사단 제9연대, 힐 특수임무부대, 미 제1해병여단 등을 모두 투입하여 수차례에 걸친 공격작전 끝에 북한군을 낙동강 서쪽으로 격퇴했다. 그리고 미 제24사단은 8월 20일에 미 본토에서 증원된 미 제2사단에게 방어지역을 인계하고, 삼랑진으로 이동하여 미 제8군의 예비가 되어 부대정비에 집중했다.
이후 이기식 일병이 소속된 미 제24사단은 기계-안강 지역이 돌파될 위기에 처하자, 8월 27일에 급히 경주 지역으로 투입되어 무릉산∽곤계봉을 점령하여 격렬했던 북한군의 9월 공세를 격퇴했다. 북한군은 9월 12일부터는 반격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단은 9월 16일부터 개시될 유엔군의 총반격작전 준비에 집중했다. 그는 9월 12일 전투에서 미군 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전투하다가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9월 15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14묘역-3판-211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9-ㄱ-06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