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식(李基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102580
  • 전몰일자 : 19530310

공훈사항

이기식 이등중사는 경상북도 대구시 달성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청천강 선으로 철수했던 1950년 11월 초순,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6사단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기식 이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950년 12월 중순, 제6사단은 동두천 북방의 전곡-백의리를 잇는 고지군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얼마 후 국군과 유엔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시작된 중공군의 신정공세로 평택-삼척선으로 후퇴했으나, 이곳에서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이곳에서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2월 공세, 4월 공세, 5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6월 중순에 캔사사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당시 제6사단은 백암산을 좌우로 연하는 방어진지를 점령했고, 쌍방 간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이후 제6사단은 방어진지 전방의 전초기지에 대해 두 차례에 걸친 공격작전(금성천 부근전투, 949고지 전투)으로 방어선을 금성천 분지 전방으로 추진했다. 그리고 사단은 1952년 1월 10일부로 미 제9군단에서 배속해제 되어 사단과 함께 양구 일대로 이동하여 야외기동훈련을 했으며, 3월 22일부로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40사단으로부터 전방방어진지를 인수했다.
이기식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사단의 우전방인 765고지-교암산을 점령하고, 제2대대는 전진기지인 575고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중공군은 575고지를 빼앗기 위해 4월 16일 야간에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탈취했다. 아군은 되찾기 위해 4월 18일까지 혈투를 벌였으나 되찾지 못했다. 제7연대는 5월 22일에 제19연대에 방어진지를 인계하고, 사단 예비로 전환하여 부대정비 및 진지보강공사, 수색작전 활동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이기식 이등중사가 소속된 소대는 12월 20일에 진전 수색활동 중에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분대장으로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부산의 제3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기식 이등중사는 의료진들의 헌신적인 치료를 받았으나, 부상이 심하여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1953년 3월 12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식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31묘역-판-2462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8-ㅅ-05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