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복(朴相福)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4582
  • 전몰일자 : 19510508

공훈사항

박상복 일병은 경상남도 양산군 상북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일어섰다. 박 일병은 1951년 1월경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 제3차 공세에 밀려 37도선 일대로 철수하여 전열을 정비하고 있었고, 제3사단은 평창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2월 5일 미 제10군단과 국군 제3군단이 라운드업 작전을 전개하여 반격을 했고, 이때 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2월 10일 평창으로 북상하여 횡성 동북방의 제5사단 작전지역을 인수했다.
2월 11일 중공군은 횡성-원주 축선에 전력을 집중하여 2월 공세를 감행했다. 횡성 동북방에서 공격하던 연대는 중공군 제197사단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섬강 일대에서 혈전을 벌이면서 적의 전진을 저지했다. 연대의 선전으로 횡성 후방으로 우회 기동하여 유엔군의 퇴로를 차단하고자 하던 중공군의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되었다. 북한군 제5군단이 제천 방향으로 돌파구를 확장하며 사단을 끈질기게 공격함에 따라 연대는 제천 북방의 성남리 부근에 진지를 편성하여 적의 공격을 저지했고, 2월 18일 적의 공세는 중지되었다.
2월 21일 유엔군의 킬러작전이 개시되었고, 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횡성군 강림-안흥-봉화산 방향으로 진격했다. 연대는 봉화산을 탈취하기 위해 3월 1일부터 4일까지 혈전을 벌였다. 연대는 유엔군의 리퍼작전 때 하진부리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며 3월 28일까지 38도선 상의 현리-하서림을 연하는 선을 확보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4월 초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연대는 4월 중순 인제군 한계리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했다.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 때 연대는 인제의 가리봉, 한석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과 치열한 격전 끝에 결국 주 방어선인 가리봉을 지켜냈다. 이후 연대는 공격을 계속하여 현리 북방 일대까지 진격했다. 이 진격전에서 박 일병은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맞아 5월 8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복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3판-6면-15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6-ㅊ-10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