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백(朴相伯)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1115157
  • 전몰일자 : 19510527

공훈사항

박상백 하사는 경상남도 부산시(現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북한군이 낙동강 선까지 남진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8월 하순경 경상남도 구포에 위치한 제3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 주한 미군에 파견된 한국군)병으로 차출되었다.
박상백 하사는 기본교육을 받고 美 제25사단에 배치되어 적정탐색, 포로심문 등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1951년 2월 중순경 육군직할 제9경비대대로 전속되었다. 육군본부는 후방지역에서의 공비토벌과 보급로 확보, 포로경비 등을 위해 1950년 11월부터 1951년 4월까지 14개 경비대대를 창설했다. 제9경비대대는 1951년 2월 10일 강원도 삼척군 호산리에서 비호부대를 개편하여 창설되었다.
한편,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퇴로가 차단당한 북한군 패잔병들은 후방 산악지대에서 활동하던 지방 게릴라들과 합세하여 점차 전력을 재정비하고, 유엔군의 병참선을 차단하거나 전투근무지원시설들을 습격했다. 이들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선이 38도, 37도선으로 내려오자 전선타격부대와 배합전술을 펼치면서 아군의 후방지역을 더욱 적극적으로 교란했다. 이에 육군본부는 일부 사단들을 투입하여 게릴라 토벌작전을 전개했다. 태백산지구에는 제2사단이 2월 13일부터 4월 8일까지 투입되어 토벌작전을 실시했으나 일부 잔당들이 계속 활동하고 있었다.
박상백 하사가 소속된 제9경비대대는 제2사단의 토벌작전에 이어 제1군단 후방지역작전 임무를 수행했다. 대대는 삼척, 강릉, 태백산 일대에 대한 수색정찰과 매복작전을 반복하면서 적 게릴라들의 침투를 방지하고, 침투한 게릴라들과 잔당 빨치산 세력들을 소탕함으로써 제1군단의 후방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때로는 주보급로 및 주요시설 경계임무를 수행함으로써 군단의 작전 성공을 보장했다.
그러던 중 1951년 5월 26일 제9경비대대는 경상북도 문경 일대의 보급로 주변 고지에 대한 수색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전투에서 박상백 하사는 분대원을 진두지휘하며 적을 찾아 수색을 하다가 적 게릴라의 기습사격을 받았으나, 적을 끝까지 추격하여 격멸했다. 하지만 그는 5월 27일 은거해 있던 적의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백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충무무공훈장(훈기번호 28007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47묘역-7판-1021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6-ㅇ-01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