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민(朴相敏)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604106
  • 전몰일자 : 19510601

공훈사항

박상민 일병은 경기도 평택군 팽성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박 일병은 1951년 3월 28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수색중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으로 전환하여 서울을 수복하고 38도선 일대까지 진격했고, 제7사단은 평창군 백적산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하진부리 일대를 점령하여 적과 대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4월 3일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다. 이때 사단은 4월 중순 인제 서쪽의 관대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 4월 공세(4. 22.~30.)에 밀려 인제 서남방 소양강 변의 정자리 일대까지 후퇴했다. 미 제8군은 5월 7일 홍천-인제-간성 간 도로를 확보할 목적으로, 그 북쪽의 10~25km를 잇는 미주리선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고, 이때 사단은 소양강 남쪽의 부평리-청구리 일대를 확보했다.
5월 16일 중공군 5월 공세가 시작되었고, 중공군은 제20·27군의 전 화력을 집중하여 강력한 공격준비사격을 사단과 제5사단 정면에 집중했다. 이 공격준비사격으로 소양강 변의 정자리 일대에 배치된 사단은 많은 피해를 입었고, 통신선이 단절되어 지휘통제 능력을 상실했다.
중공군은 사단 정면을 집중 돌파 후 종심기동부대를 투입하여 국군의 후방을 차단하여 포위 격멸하려 했기에, 제8연대 정면에만 해도 중공군 2개 사단이 집중 돌파를 감행했다. 사단 장병들은 백병전을 펼치며 결사적으로 적을 저지하려 했으나, 압도적인 적의 공격에 밀려 5월 18일에는 풍암리까지 후퇴했다. 사단은 더는 돌파를 허용하지 않고 이 일대에서 적의 공격을 막아 냈다. 이 전투에서 박 일병은 신병이었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앞장서서 싸우다가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6월 1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민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4판-8면-24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2-ㄴ-08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