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문(朴相文)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9818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박상문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신천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49년 말부터 북한의 남침 우려가 커지는 가운에 대한민국과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50년 6월 초순에 입대하여 육군직할 제1보충대에 배치되었다.
제1보충대는 1949년 9월 15일 경기도 수원에서 창설되어 신병 보충업무를 수행했다. 북한의 남침징후가 높아짐에 따라 육군본부는 경계강화 지시를 수차례에 걸쳐 거듭 하달했고, 장병들의 보충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박 일병은 입대한 장병들을 부대까지 이송하는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북한군 제6사단(-)은 개성을 점령한 뒤 25일 저녁 국군 제1사단 제12연대를 추격하여 영정포, 강녕포 일대에서 도하준비를 했다. 북한군의 도하 징후를 포착한 육군본부는 급히 김포지구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그곳으로 도하한 제1사단 제12연대 제2대대를 포함하여 남산학교, 보병학교, 공병학교, 보충대, 보국대대 등 서울 인근의 가용 병력을 혼합 편성하여 적의 공격을 저지하도록 했다.
이에 제12연대 제2대대, 기갑연대 혼성대대, 보국대대, 보병학교 후보생대대 등이 긴급 편성되어 김포반도의 한강 남안에 급편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때 보충대는 보병학교 후보생대대에 편성되어 전선에 투입되었다. 한강 남안에 배치된 이들 부대들은 임시로 긴급 편성되었기에 통신 수단이 강구되어 있지 않아 인접에 어느 부대가 배치되었는지도 서로 알지 못한 채 방어에 임하고 있었다. 따라서 조직적인 방어가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북한군 제6사단은 26일 밤부터 도하 공격을 개시했고, 27일 오전에 아군 방어선이 붕괴되면서 아군 부대들은 제각기 철수했다.
보병학교 후보생대대는 좌측방이 공격을 받고, 적이 후방으로 침투함에 따라 27일 11시에 철수하여 장림-운유산 선의 장림 삼거리 북쪽의 구릉지 일대를 점령하여 적의 전진을 막고자 했다. 박 일병을 포함한 혼성 대대원들은 적의 전진을 막아보고자 안간힘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오후 1시를 전후하여 장림 선이 무너지자 후보생대대는 김포읍 쪽으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박상문 일병은 진지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남아 적의 전진을 막아 내다 적탄에 맞아 6월 27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1판-5면-17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79-ㅈ-01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