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묵(朴尙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2503019
  • 전몰일자 : 19530218

공훈사항

박상묵 일등중사는 1926년 12월 3일 경기도 안성군 미양면에서 출생하였다. 1948년에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는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한 끝에 1948년 12월 14일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했으며,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박상묵 일등중사가 전선에 배치될 당시 전황은 서울 함락 후 낙동강까지 철수했던 국군이 유엔군과 함께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집요한 공격을 물리친 후 반격 및 북진작전에 돌입했으나 예상치 못했던 중공군의 개입과 세 차례의 공세로 평택-삼척을 연하는 선까지 철수하였다.
박상묵 일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1년 2월 11일에 개시된 중공군의 제4차 공세에 전 전선이 밀리게 되자 또다시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하였다. 이어 박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은 평창 일대에서 대관령 방향으로 조심스러운 반격작전을 계속해 설악산으로 진출하였다. 8월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고지쟁탈전은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박상묵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0월 12일에 시작된 전투에서 북한군 제19사단으로부터 월비산을 탈취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1952년 지형능선과 수도고지에 대한 제한공격이 무위로 끝난 후 전선은 8월 초까지 교착상태에 접어들었다. 이후 9월 6일 북한군은 맹렬한 공격준비사격과 더불어 각각 1개 중대 병력으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지형능선상의 전초소대는 오후 9시경 수명의 생존자만이 철수하면서 능선을 북한군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박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은 9월 20일까지 수차에 걸친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면서 진지를 사수하였다. 이후 10월 6일부터 4일간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 재개된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였으나, 8일 575고지를 상실한 후 끝내 회복하지 못하였다. 그와 연대병력은 12월 12일 강원도 사창리 북쪽으로 이동하여 미주리선 방어임무에 돌입하였다.
박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953년 1~2월에는 전력증강과 진지공사에 주력하고 있었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언제나 모범을 보이며 솔선수범하였다. 최후까지 분전하며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하던 박상묵 일등중사는 1953년 2월 18일 김화 부근 전투에서 푸른 청춘의 꿈을 남겨둔 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묵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4494 국)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7-ㄷ-03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