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목(朴尙穆)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725

공훈사항

박상목 경사는 1927년 3월 7일 경남 창녕군 부곡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경남도경 거제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진주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박 경사는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에 들어서면서 북한 유격대가 태백산 일대에 계속 침입하자 치안국은 시흥 육군보병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경찰 간부들을 중심으로 4월 20일 제8·제9전투경찰대대를 편성하여 강원도 영월과 춘천지역에 배치하는 등 전·후방의 치안확보를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6월 10일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38도선 접경지역인 경기·강원 2개 도에 비상경비태세 강화명령을 내려 북한의 군사동태를 잘 살피도록 하였다.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거제경찰은 해상으로부터 적의 침입에 대한 경계태세를 강화했다.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자 전선은 빠른 속도로 남쪽으로 이동되어 7월 22일 사천-진주-함양-거창-김천-상주를 연하는 선에서 형성되었다. 군경부대는 진주·마산으로 진격하는 북한군 제6사단에 대비하기 위해 경남·전남·전북의 경찰병력 4,000명으로 전투편성을 한 다음, 지휘소를 함안군 군북면에 두고 미 제25사단, 한국 해병대와 합동으로 적과 대치했다.
7월 22일 진주에 투입된 거제경찰은 진주시 칠암동에 지휘소를 설치하고 거점방어, 오열 색출,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임무를 수행했다. 7월 24일 북한군이 하동과 진주를 점령하고자 한다는 정보에 따라 거제경찰은 진주시 이현동으로 기동하여 방어진지를 구축하며 북한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7월 25일 오전 5시 북한군이 3개 방면에서 진주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박 경사는 적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목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6-ㅌ-05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