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목(朴商睦)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1113

공훈사항

박상목 경사는 1930년 11월 13일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강원도경 주문진 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주문진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개전과 동시에 북한군 제5사단은 아군의 정면에서 공격을 하고, 유격부대인 제766부대와 육전대인 제549부대는 아군의 후방지역 해안으로 상륙하여 아군 제10연대와 제21연대를 차단, 각개격파를 기도했다. 주문진경찰서 관내인 서림에서 잔교에 이르는 정면에 북한군 제5사단이 공격을 하였으며, 같은 시기에 북한군 제766부대는 강릉 후방의 안인진에, 제549부대는 옥계면 정동진에, 제200지대는 임원진에 기습 공격을 가했다.
7월 1일 강원도 경찰은 영월과 울진을 제외하고는 군의 작전에 따라 남쪽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강원경찰은 영월 일대에서 지연전을 끝내고 경북 영주로 철수하여 각서 단위로 집결한 병력을 전투대로 통합하여 재편성하였는데, 주문진·인제·횡성 경찰은 제6전투대대로 편성되었다. 강원경찰의 일부는 제8사단의 작전통제하에 죽령에서 풍기, 영주, 예천 선에 이르는 지연전에 참가했다.
제6전투대대는 풍기-영주-안동을 따라 지연전을 실시하여 8월 10일에 영천에 도달했다. 이곳에서 제6전투대대는 거점방어, 군위-영천, 대구-영천, 영천-포항을 잇는 주요 보급로통제, 오열 색출, 철도경비 임무를 수행했다.
그 후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북한군의 퇴각과 함께 전선이 북상함에 따라 경찰관서 수복작전이 전개되었다. 먼저 동해안의 영일경찰서가 수복되었고 이어서 9월 하순경에 예천, 상주, 문경, 영주경찰서 등이 복구되었다. 주문진 경찰은 10월 15일 주문진경찰서를 수복하고 지역 내 잔적소탕작전과 치안유지활동을 전개했다. 이 당시 북상하던 잔적은 경찰서를 공격하는가 하면 양민 학살과 약탈을 자행했다.
11월 13일 주문진 장리에서 잔적소탕작전에 참가한 박 경사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적을 격퇴하던 중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목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5-ㅊ-01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