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만(朴相万)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17680
  • 전몰일자 : 19520622

공훈사항

박상만 이등중사는 1926년 3월 2일에 전라남도 목포시 서산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대규모 공격을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한 1951년 5월 28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박상만 이등중사이 부대로 전입했던 6월 말, 제6사단은 백암산 일대를 좌우로 잇는 고지군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유엔군과 공산군은 휴전협상이 진행 중이었는데, 공산군은 휴전협상을 지연시키면서 군사력 증강에만 집중했다. 이에 유엔군 사령관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군사적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각 부대에 공격작전을 실시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박상만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방어진지 전방에 위치한 등대리 부근의 819고지-462고지를 공격했다. 연대는 8월 31일과 9월 1일에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중공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점령하지 못하고, 부대정비를 한 후에 9월 21일에 재차 공격하여 28일에 목표(819고지)를 탈취했다. 더 나아가 사단은 금성천 부근을 장악하기 위해 10월 13일부터 21일까지 공격하여 이 일대를 감제할 수 있는 교암산(770고지)까지 탈취했다.
이후 제6사단은 1952년 1월 10일에 미 제9군단에서 배속 해제되어 양구 일대로 이동하여 전기전술을 연마하는 훈련에 집중했다. 이후 3월 22일에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부근의 거리실, 원남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40사단으로부터 방어진지 일부인 봉화산(477고지)-교암산(770고지)을 잇는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그리고 사단은 3월 29일부로 미 제9군단에서 백 전투사령부(국군 제2군단으로 개칭)로 배속이 변경되었다.
박상만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봉화산-442고지 일대의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주간에는 수색정찰, 야간에는 매복작전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군단은 포로교환 문제로 교착된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방어진지 전방에 대해 공세적인 작전을 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이에 제2연대는 방어진지 전방의 무명고지(금성천 동북방 A, B고지)를 6월 12일부터 공격하여 15일에 탈취했다. 이후에도 적의 계속된 공격과 아군의 반격으로 전투는 그치지 않았고, 적은 6월 21일에도 공격했다. 그는 6월 22일까지 계속된 전투에서 분대장으로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만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5-ㄴ-03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