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상림(박상림)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122983
  • 전몰일자 : 19521011

공훈사항

박상림 중위는 험난한 격동기에 청년기를 맞아 조국을 지키는 간성이 되고자 군문을 두드렸다(출생지 및 출생 일자 미상). 그는 과거 군 경력을 인정받아 1952년 4월 24일 장교로 임관하여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박상림 중위가 부임할 당시 사단은 1952년 5월 금성-북한강 동안까지의 전선을 인수하여 동부전선을 방어하고 있었다. 박 중위는 장병들을 지휘하여 화천일대 금성천 북안 일대에서 정찰활동을 수행하던 중 북한군과 마주치게 되어 교전을 벌여 중공군 여러 명을 사살하는 수훈을 세웠다.
박상림 중위의 지휘 아래 사단 일부 병력은 1952년 7월 8일 지형능선을 공격해 점령했으나 북한군의 역습을 받아 물러났다. 전선은 7월과 8월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서 각각 한 차례씩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전개되었으며 그 뒤 8월 중순에 접어들어 다시 교착상태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9월 6일 북한군은 맹렬한 공격준비사격을 가한 후 고지 좌우측 계곡으로 공격해 왔다. 이에 박 중위와 장병들은 최후까지 분전했으나 수도고지는 함락되었다. 이어 9월 9일 고지탈환 임무를 부여받은 연대는 공군의 근접지원과 포병의 지원 아래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때 그는 앞장서서 고지를 향해 돌진해 고지를 점령하였다.
박상림 중위와 사단 병력은 10월 6일부터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 재개된 북한군의 공격을 받고 고지를 끝까지 사수하였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위기에 놓인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공방전을 계속하며 투혼을 발휘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고 장병들에게 솔선수범하는 소대장으로 전투경험이 부족한 장병들을 지휘해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상림 중위는 1952년 10월 11일 북한군의 공격에 대비해 진지를 보강하면서 전방으로 정찰을 수행하던 중 김화에서 북한군의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상림 중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2판-2면-694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09-ㅁ-06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